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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뉴욕=이준기 특파원] “코로나19의 후폭풍은 겪었던 그 어떤 것보다 가혹합니다.”
미국호텔숙박협회(AHLA)의 칩 로저스 회장은 “이번 사태로 인한 호텔업계 영향은 9·11 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호텔 객실 이용이 급감한데 따른 것이다. CNN에 따르면 협회는 800만명이 넘는 미국 호텔업계 종사자 중 절반이 넘는 4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보잉은 최근 정부에 600억달러(약 75조3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하늘길이 막힌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일각에서는 보잉이 코로나19 쇼크의 첫 긴급구제(bailout)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모터스(GM)의 전철을 밟는다는 것이다. 다른 중소형 항공사들은 급전을 구하지 못하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는 향후 1년간 410억달러(약 51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가가 폭락하자 자산을 팔아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곧 투자 받았던 기업들의 돈줄은 마른다는 뜻이다.
욕 먹을 각오하고…회사채도 산다
코로나19로 인한 복합위기로 전세계 산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무역결제와 금융거래의 중심인 미국 달러화를 무제한으로 풀고 특히 전례 없는 회사채 매입에 나서는 것은 이번 위기의 본질은 ‘기업’이라는 인식의 방증이다.
23일(현지시간)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달 초 이후 미국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하이일드 채권의 신규 발행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투자등급 아래 투기등급의 경우 기업 줄도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투자등급에 있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펩시 등이 이번달 회사채 발행을 재개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발행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어 있다.
숙박, 항공, 에너지 등은 산업군 전체가 침몰 위기다. 미국 최대 셰일가스업체 중 하나인 옥시덴탈 페트롤리엄은 최근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의 표적으로 몰렸다. 근래 몇 년 무리한 사업 확장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수십개 에너지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해 은행 대출 창구(크레디트 라인)로 달려가고 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최소 30개 이상의 에너지기업이 은행 대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은행까지 문을 닫으면 파산을 면하기 어려운 구조다.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전대미문의 회사채 매입 카드까지 꺼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준의 이날 발표 중 가장 주목 받는 건 PMCCF(Prim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다. 투자등급 기업을 대상으로 4년간 브리지론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기업을 연준이 직접 나서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연준은 이를 강행했다. 연준은 유통시장에서 만기 5년 이내 투자등급 회사채 등을 사들이는 SMCCF(Second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 역시 신설했다. 10여년 전보다 정책 대응의 방점을 기업에 찍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투자은행(IB) UBS는 “연준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다 쓴 것”이라고 평가했다. 씨티은행은 “투자등급 맨 아래의 BBB 등급 기업의 신용등급 강등 위험(추락 천사·fallen angels)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유동성 회복의 계기”라고 했다.
연준이 중소기업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MSBLP(Main Street Business Lending Program)를 추진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MSBLP도 과거 위기 때 써본 적이 없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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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등급 회사채 발행 한 건도 없어
회사채 경색 위기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회사채 발행잔액은 32조달러(약 4경240조원)에 달한다.
특히 중국의 부동산 관련 회사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2월 현재 중국의 부동산 회사채 잔액은 6470억달러(약 815조2000억원)다. 예컨대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사인 에버그란데는 금리 13%짜리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이는 신용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해미시 더글라스 호주 마젤란금융 회장은 “코로나19는 (저금리 장기화로) 부채에 기대 왔던 기업을 도산 위기로 몰고 있다”며 “오로지 정부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기업 자금 지원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씨티은행은 “회사채 유동성 공급이 추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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