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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서울시 중구 회현동에 자리한 우리은행 본점 정문 앞에는 고종황제 흉상이 있다. 고종의 ‘기구한 운명’은 우리금융의 역사와도 닮아 있다.
대한제국 제1대 고종황제(재위 1863~1907년)가 설립자인 대한천일은행(1899년 5월)은 우리금융의 모태다. 대한천일은행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 금융자본이 밀려든데 따른 민족 차원의 돌파구였다. 한국의 첫 근대적 금융기관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올해 들어 ‘창립 120주년 마케팅’, 다시 말해 가장 오래된 은행의 이미지를 새삼 부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금융의 120년은 굴곡진 근현대사의 금융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천일은행은 1910년 국권 상실 후 일제의 강요로 ‘대한’이라는 용어를 폐기했고 1912년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했다. 1990년대 은행권 ‘빅5’인 이른바 ‘조(조흥)·상(상업)·제(제일)·한(한일)·서(서울)’ 중 두 번째였던 한국상업은행의 전신이다.
우리금융의 또다른 축은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탁 분야에서 자본을 동원해 일본의 자본 축적을 돕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조선신탁주식회사다. 조선신탁주식회사는 광복 후 한국신탁은행으로 이름을 바꿨고 1960년 한일은행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한국 은행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1990년대 말 외환위기다.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로 부실채권이 많아지면서 조·상·제·한·서 모두 간판을 내린 초유의 사건이다. 이 중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1998년 합병하고 약 4조원의 부실채권을 매각하며 탄생한 곳이 한빛은행이다.
그 이후 정부는 2001년 한빛은행에 평화·경남·광주은행과 하나로종합금융을 묶고 13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해 우리금융지주를 세웠다. 한국 최초의 금융지주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사는 한계가 분명했다. 정부는 2009년까지 수차례 블록딜을 통해 지분을 100%에서 57%까지 줄였고 2010년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 증권사와 지방은행 등 계열사들을 분리 매각한 끝에 2014년 11월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14일 우리금융이 금융지주 체제로 재차 출범한데 또다시 4년여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올해 들어 창립 120주년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손 회장부터 자신의 업무용 차량 번호를 행장 시절 ‘8111’에서 지난 11일부터 ‘1001’로 바꿨다. 모태인 대한천일은행의 ‘천일’과 음이 같은 숫자다.
우리은행은 또 특판예금인 ‘우리 120년 고객동행 예금’을 최고 연 2.6%에 출시했다. 특판대출인 ‘우리 소상공인 120 대출’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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