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대론 다 망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8년 만의 감산 합의의 이면에는 이 같은 절박한 심경이 담겼다.
국제 유가(뉴욕상업거래소 WTI 선물 기준)는 2014년 7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 전후였으나 그해 8월 이후 급락했다. 2016년 2월12일엔 4분의 1 수준인 26.21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도 50달러를 좀처럼 넘지 못했다.
충격파는 컸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 한해 중동·북아프리카 산유국의 손실이 3900억 달러(약 456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 국가의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였다. 올해 손실은 이보다 큰 5000억 달러(585조원)으로 전망됐다.
이해관계에 종교 갈등까지… 쉽지 않았던 협상
협상은 쉽지 않았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란 공범끼리 서로 협력해 자백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이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 서로에게 불리한 자백을 하게 된다는 게임 이론이다.
OPEC 내 1~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이란, 비 OPEC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은 마치 죄수의 딜레마처럼 유가 하락이란 공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당장 자국을 위해 증산 경쟁을 펼쳤다.
모두가 공급 확대가 유가 하락을 낳고 유가 하락으로 낮아진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다시 공급을 확대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주요국 모두 증산해야 할 이유는 있었다. 왕정 국가인 사우디는 피폐해진 경제난 속에 왕정에 대한 부정 여론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란은 핵개발 추진 이후 13년 동안 이어진 서방의 경제 제재로 어떻게든 경제를 회복해야 했다. 더욱이 이제 막 산유량을 늘리기 시작한 이란으로선 5년 넘게 하루 200만 배럴씩 증산해 온 사우디가 이제 와서 산유량을 같이 줄이자는 건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게다가 유일한 시아파인 이란과 수니파의 중심 국가인 사우디는 종교 갈등까지 있었다.
이번 협상에서도 이란은 예전 수준인 일 397만5000배럴 생산은 유지해야 한다며 동결을 요구했고 사우디는 370만7000배럴까지 낮춰야 한다고 요구하며 팽팽히 맞섰다.
결국 이 두 국가는 알제리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이란이 17만5000배럴 낮춘 일 380만 배럴까지 감산하는 데 동의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사우디로선 이란과의 기 싸움도 중요하지만 당장 원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비전 2030‘ 프로젝트와 내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유가를 높여야 할 필요가 더 컸다. 사우디의 감산량은 하루 48만6000배럴이다.
두 나라가 합의에 도달하자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을 이유로 감산에 부정적이었던 이라크도 동참을 결정하는 등 13개 가입국이 모두 동참키로 했다.
또 OPEC이 합의에 도달하면서 비OPEC 회원국 중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도 생산량을 일 30만 배럴 감축할 의사를 밝혔다.
성실 이행 여부 미지수… 한곳 어기면 다시 원점
합의에는 성공했지만 이들 산유국의 성실한 이행 여부는 미지수다. 유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증산하고 싶은 욕구는 커지기 때문이다. 또 한곳이 어기게 되면 다시 증산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OPEC이 산유량을 일평균 150만배럴(5%) 줄여도 국제유가는 배럴당 2.50달러 오르는 데 그치리라고 분석했다. 이대로라면 감산에 따른 손해가 유가 상승 이익보다 더 크다.
씨티그룹은 OPEC 합의 직후 러시아의 감산 이행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팀 에번스 씨티퓨처스 분석가는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30만 배럴을 줄이겠다고 밝혔으나 현재 기준 감산인지 증산을 계획한 내년 기준 감산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며 “러시아의 원유 감산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1일 다우존스가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