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외식값에 고삐 풀린 물가 오름세…서민 시름 깊어진다

임애신 기자I 2022.04.05 16:22:58

3월 소비자물가 4.1% 상승…10년 3개월 만에 최고
국제유가 상승에 석유류 31.2% 급등…외식 6.6%↑
에너지·음식료 뺀 근원물가도 10년 3개월 래 최고
우크라 사태 지속되는 한 고물가 상황도 지속될 듯
"비용측면 인플레 본격화…서민 핀셋지원 필요해"

[세종=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년여 만에 4%를 넘어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급등한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국내 물가에 전이된 결과다. 그나마 정부가 전기·가스요금 등의 공공요금 인상을 늦추거나 억누르면서 추가적인 물가 상승은 막았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는 모습.(사진=뉴스1)


좀처럼 지정학적 위험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유가·외식물가 ‘쌍끌이’

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6.06(2020=100)으로 전년동월대비 4.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9년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선 뒤 11월(3.8%), 12월(3.7%), 올해 1월(3.6%), 2월(3.7%)까지 5개월 간 3%대를 유지하다 3월엔 4%를 넘어섰다. 물가가 4%를 기록한 것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물가 상승을 견인한 것은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 서비스다.

(자료=통계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교착 상태가 장기화하며 국제유가의 오름폭이 커졌다. 이로 인해 휘발유(27.4%), 경유(37.9%), 자동차용 액화석유가스(LPG)(20.4%)가 일제히 상승하면서 석유류 물가는 31.2%나 뛰었다. 석유류의 물가 기여도는 2월 0.79%포인트에서 3월 1.32%포인트로 0.53%포인트 확대했다.

석유류와 맛김·어묵·떡 등 가공식품을 포함한 공업제품은 6.9% 상승했다. 2008년 10월(9.1%)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오름세가 둔화하며 0.4%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외식물가는 6.6%나 뛰었다. 외식 가격을 포함한 개인서비스 물가는 4.4% 올랐다.

국제유가처럼 일시적인 충격이나 계절적인 요인에 의한 물가 변동분을 제외해도 물가는 올랐다.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을 파악할 수 있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3.3% 올라 2011년 12월(3.6%)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2.9%로 전달에 이어 2009년 6월(3%)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5.0% 올랐다.

◇물가 상승세 지속…우크라 최대 변수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한 당분간 물가 상승률이 예년 수준을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국제유가가 좀처럼 떨어질 기세가 보이지 않는 데다 국제 곡물 가격도 1년 전과 비교해 크게 올라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원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라서 에너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며 “세계에서 차지하는 경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도 국제 에너지와 곡물시장, 공급망 차질 등에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정부도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물가를 점검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글로벌 전개 상황을 고려하면 당분간 물가 상승압력이 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물가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 마지막까지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물가 상승이 대부분 외부 요인이다 보니 정부가 대응할 대책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올해 도입한 물가 부처책임제만 해도 그렇다. 이 제도는 농·식품은 농림축산식품부, 석유류는 산업통상자원부처럼 부처별로 책임을 지고 물가를 관리하는 개념이다. 부처 관계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물가관리회의 수준에서 더 나가기 어렵다”며 “시장 구조 왜곡이나 부당 거래 등을 관리하며 세제 조정 등 필요한 관리를 하겠다”고 전했다.

오미크론 대유행이 정점을 지나 꺾일 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방역 조치가 완화하면 수요 측면에서의 압력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길어지면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오르며 비용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했다”며 “물가 상승은 서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공공물가 조정, 에너지 바우처 지급 등을 통해 서민들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부터 연착륙할 수 있게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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