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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독과점 우려 없는데…中 '만만디' 에 M&A 발목

김상윤 기자I 2021.12.20 17:19:31

중국에 재심사 신청..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 진행
결합 이후 '1위 삼성전자' 건재..경쟁제한 가능성↓
불허 가능성은 제한적.."中경쟁정책 투명성 높여야"

[이데일리 김상윤 최영지 기자] SK하이닉스와 인텔 낸드사업부 기업결합(M&A)이 1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기업결합 이후 시장판도에 큰 변화가 없지만, 유독 중국 경쟁당국만 쉽사리 승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내 결론이 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지만, 중국 당국이 여전히 ‘깜깜이’ 심의를 하고 있어 SK하이닉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20일 반도체업계·정부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SK하이닉스·인텔 낸드 M&A 건에 대해 진일보심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역할을 하는 이 부처는 M&A 심사가 들어오면 크게 초보심사, 진일보심사로 나눠 진행한다. M&A로 인해 경쟁구도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초보심사를 거쳐 한 달 만에 결론을 낸다. 반면 중국 산업 내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M&A라면 진일보심사로 올려 180일(초보심사 기간 포함) 내 결론을 내린다.

올 초 기업결합 신청이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거의 1년째 심사가 계류 중이다. 이미 180일이 지나 첫 신고는 기각됐고, SK하이닉스는 재신고서를 내고 중국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재신고서를 냈고, 중국 내 이해관계자들 의견 등을 수렴하다 보니 심사가 늦어지고 있고 언제 결론이 낼 것이라는 시그널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SK하이닉스와 인텔 낸드 사업부 M&A는 그리 복잡한 사건은 아니다. 결합회사 1위 사업자로 올라서면서 2위와의 시장점유율 차이가 25%포인트 이상 벌어질 경우 등 경쟁구도가 심각하게 무너질 경우엔 문제가 되지만 이번 딜은 이와 무관하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M&A 딜이 이뤄진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매출 비중은 11.6%, 인텔은 8.6%다. 양사가 합쳐지면 글로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가 된다. 압도적 1위인 삼성전자(32.9%)뿐만 아니라 키옥시아(19.5%), 웨스턴디지털(14.4%) 등도 건재한 경쟁사로 남아 있기 때문에 낸드플래시 시장의 경쟁구도는 여전히 유지된다. 지난 3분기 기준으로 SK하이닉스와 인텔은 각각 점유율이 13.5%, 5.9%로, 양사 합계 점유율은 19.4%로 오히려 떨어졌다. 낸드플래시로 만드는 솔리드스테이트 드라이브(SSD)의 경우 양사가 결합하더라도 역시나 1위 사업자(삼성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독과점 우려는 거의 없는 편이다.

여기에 SSD의 캐시 메모리보강을 위해 D램이 쓰이는데, 하이닉스가 D램 2위 사업자라 SSD 제조업체에 D램 공급을 막을 가능성도 있지만 제한적이다. SSD에 사용되는 D램 비중은 0.2% 수준에 불과하고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다른 경쟁사업자들이 충분히 많아 대체할 수 있다. 경제분석 전공 한 교수는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전 세계 점유율과 큰 차이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딜로 인한 경쟁제한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면서 “경제학적으로는 중국 시장감독관리총국이 승인을 안 해줄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승인지연은 중국 경쟁당국의 ‘만만디(慢慢地:느리게)’ 전략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반도체 굴기’를 원하는 중국입장에서는 한국의 경쟁력 강화를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한국의 기술이전이나 다른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국 낸드플래시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을 키우기 위해서다.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중국 경쟁당국이 설치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제도나 ‘깜깜이 운영’ 등으로 외국기업이 애를 먹고 있다”면서 “과거 CJ대한통운이 중국 물류기업 등을 인수할 때도 상당한 시일이 지연됐는데 이번 역시 비슷한 경로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중국 경쟁당국이 불허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중국이 시장 원리를 도입하고 경쟁정책을 본격적으로 펴고 있는 입장에서 충분한 근거와 논리 없이 이번 M&A를 막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로펌 관계자는 “중국입장에서도 외국인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경쟁정책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야 한다”면서 “이번 딜에 대해 다른 경쟁당국은 이미 ‘문제없음’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다른 결론을 내리거나 시간을 차일피일 미루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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