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지난 19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에너지 담당이 아님을 전제로 누진제 개편과 관련해 “연말까지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며 “불합리 요인을 조정해야겠지만 (신산업 투자 관련) 제약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정 차관은 “우리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감축하려면 석탄화력을 문 닫고 스마트그리드(IT와 결합한 전력망), 전기차, (신재생) 발전소를 늘려야 한다”며 “기업이 (이런 신산업에) 투자를 하려면 수익이 나야 하는데 전기요금이 너무 싸면 팔리겠는가”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정용 요금은 109.6 $/MWh, 산업용 요금은 101.5 $/MWh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 각각 61.3%, 80.6%로 저렴했다. 발전단가가 낮은 편인 석탄화력·원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차관은 지난달까지 2년간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을 맡으면서 누진제를 비롯해 에너지 전반 업무도 담당해 왔다. 전기요금이 누진제 개편으로 인하되면 전기 판매 수익성이 떨어지고 에너지 신산업에 진출할 민간기업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 차관의 전망이다. 이는 전기료를 깎아준 만큼 한전의 신산업 투자도 감소할 것이란 전망으로도 풀이된다.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TF)에서도 이런 우려 때문에 신산업과 누진제 개편을 연동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 TF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누진제 개편 방향이 정해진 게 없다”면서도 “전기가격을 개편할 때 에너지 신산업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다”고 전했다. TF 내부에서도 신산업 투자를 저해할 정도로 전기료를 대폭 낮추는데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해외보다 높은 누진율(최고·최저 요금 간 비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체감하는 전기료 부담이 상당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국전력(015760)을 상대로 누진제 관련 집단소송을 제기 중인 법무법인 인강은 피해사례 분석 결과 실질 누진율이 41.6배라고 주장했다. 이는 한전 추산 11.7배 누진율(전력량 요금 기준), 미국 뉴저지주(1.1배), 영국(0.61배), 일본(1.4배), 대만(여름 2.4배, 나머지 1.9배)보다 높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누진제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면서 에너지 신산업을 추진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날씨가 선선해지면 누진제 개편에 미온적이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이대로 가면 겨울철 난방비 누진제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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