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자산 규모 500억원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딸을 제쳐두고 외아들에게 재산을 전부 물려주기로 했다. A씨가 지독한 남녀차별주의자라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가업상속 공제 요건이 충족된다. 현행 가업상속 공제는 한 사람에게만 재산을 물려줄 경우에만 가능하다.
A씨의 딸이 유산을 받으려면 소송을 걸어야 한다. 유산의 일정한 정도를 유보해야 하는 유류분 제도를 통해 1/2n 만큼은 유산을 받을 수 있다. 가업상속 공제도 유류분 제도를 통해 다른 형제가 상속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다. 그러나 형제자매간 소송을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 사례는 실제 기업인들이 가업상속 공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충족시키기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동상속을 허용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지난해말 국회에서 부결됐다. 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한 해에 가업상속 공제의 혜택을 받는 기업은 50여개에 불과하다.
기업인들이 어려워하는 또다른 가업상속 공제 요건은 사후관리 부분이다. 특히 10년간 근로자 수를 유지하는 조항은 자칫 회사의 구조조정을 막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부결된 개정안에는 이 역시 호황과 불황이 겹치는 사업의 주기를 고려해 7년 평균 100%로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강형원 삼성 패밀리 오피스 세무팀장은 “가업상속 공제는 현재 회사 대표뿐만 아니라 대를 잇는 대표가 10년을 사후관리해야하는 일”이라며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다면 추후에 공제 받은 세금을 부과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성열기 삼성 패밀리 오피스 센터장은 “대부분의 법인CEO의 자산구조를 보면 90%가 고정자산으로 현금유동성이 낮은데 상속세 납부를 위해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처분해야하므로 사업승계에 취약한 구조”라며 “유동성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편중된 법인지분을 이전, 승계에 유리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