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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에게도 누구 편이냐 묻는 시대…진영 갈등이 억울함 키워"

한광범 기자I 2022.01.04 18:00:31

[인터뷰]'우리는 왜 억울한가' 개정판 낸 유영근 판사
"모든 사회 문제 편가르기 무책임…객관적 판단 필요"
"억울함, 우리의 힘…권리구제·정의실현 적극성 보여"

유영근 부장판사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과거엔 판사에게 ‘유전무죄’에 대해 물었다면, 이제는 ‘어느 편인지’를 묻는 갈등의 시대입니다. 억울함을 더 많이 양산하는 상황입니다.”

이달 초 ‘우리는 왜 억울한가-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개정판을 낸 유영근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최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법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이 같이 평가했다.

그는 “판사에게 ‘편’을 물어보는 배경엔 그가 출세가 가능한 인물인지 알아보거나 그의 판결을 예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며 “정치적 주장 등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이 통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생기게 된 것 같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과거 법원은 판결에 대한 불만과는 별개로 진영 갈등에선 비교적 자유로웠다. 정치인이나 노동계 등에서 자신의 판결과 관련해 판사를 공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 같은 당사자들의 주장은 외부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법원도 2016년 대통령 탄핵 사태,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겪으며 진영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 부장판사는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성역이 사라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 역시 줄었다”며 “판결의 뒷배경이 있을 것이라 의심을 하다 보니 판결에 불만이 더 많아지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진영 판단 부추기는 사람들 멀리해야”

심각해지는 진영 갈등에 기름을 끼얹는 건 정치권이다. 사건의 유불리에 따라 판사를 공격하거나 지지하며 법원을 오히려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 유 부장판사는 “여러 종류의 갈등에서 일관된 하나의 입장으로 옳고 그름을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치적 견해에선 사람들이 일관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오히려 개별 쟁점마다 객관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더 필요하고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 밝혔다.

사회학도 출신인 유 부장판사는 한국인이 유독 크게 받아들이는 심정(心情)인 ‘억울함’에 대해 사회과학적 그리고 법학적으로 그 배경을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인 ‘억울함’은 별다른 이유 없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심정이지만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선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유영근 부장판사著 ‘우리는 왜 억울한가’
억울함이 가장 많이 발현되는 대표적 장소는 바로 법정이다. 기소돼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든, 타인과 분쟁을 벌이는 민사 소송의 원·피고 모두 법정에선 억울함을 주장한다. 심지어 공익의 대변자로서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검사조차 무죄 판결에 대해 억울함을 표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많은 재판을 심리해 온 유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사건의 당사자가 되면 객관적 판단력을 상실한다”며 “법률가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수없이 다뤄 봤던 유형의 사건도 자기 자신 또는 주변 사람의 문제가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고 지적했다.

간혹 등장하는 ‘여론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현대사회 재판에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단기간에 한쪽 측면만 부각돼 부풀어 오르는 여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며 “권위주의 시대 오판의 대부분은 법관이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발생했다”고 말했다.

◇“판사는 축구 경기 심판…편파 진행 안돼”

유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판사의 역할을 ‘축구 경기 심판’에 빗댔다. 일부에선 판사가 약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재판 심리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이를 일축했다.

유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게임의 규칙 자체를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운영해 주는 것은 법관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약자를 위한 소송구조제도 등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판사가 인위적으로 재판을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운영해 극복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특유의 억울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지만, 유 부장판사는 이 같은 평가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억울함은 우리의 힘이 될 수 있다. 억울함에 대한 높은 감수성은 개인적으로 보면 소송 등 권리구제에 대한 적극적 태도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 정의 실현에 대한 열망도 권리구제의 일환”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우리나라의 극적인 민주화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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