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히지 않는 전동킥보드 '헬게이트']②
13일부터 전동킥보드法 시행 헬멧 의무 착용
'자동차 앞에선 '피해자'·보행자에겐 '가해자'
전문가 "신규 모빌리티에 대한 논의 이뤄져야"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바로 뒤에서 어깨를 넘어온 자동차 경적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전동킥보드 가속 버튼을 최대한 눌렀지만, 계기판에 찍히는 속도는 20km 주변을 맴돈다.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달리는데도 이마와 등 위로 땀이 주룩 흘렀다. 한참을 뒤에서 ‘빵빵’거리던 택시가 신경질적으로 속도를 내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차가 앞선 택시와 약속이라도 한듯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 6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신촌로터리 방면 자전거 우선도로에 한 차량이 주차돼 있다. 이 차량을 비켜서 가려니 뒤에서 접근하는 차량과 접촉할 뻔하는 등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다.(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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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부터 개인형 이동장치(PM) 도로교통법 재개정안이 시행되는 가운데 이데일리가 12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서울 마포구 공덕역까지 재개정되는 도로교통법을 준수해 공유 전동킥보드를 이용해봤다. 전동킥보드를 인도 위로 주행할 땐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되며 인도에서는 손으로 끌고 가야 한다. 서울 도심 차도를 안전모를 착용한 상황에서 운행해 본 결과 위험천만한 상황을 여럿 맞닥뜨릴 수 있었다.
먼저 기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전거용 헬멧을 챙겼다. 길 위에 널려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에는 따로 헬멧이 비치돼 있지 않지만 13일부터는 탑승 시 헬멧을 쓰지 않으면 범칙금 2만원이 부과된다. 헬멧을 가방에 넣으니 다른 물품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결국 헬멧은 한 손에 들 수밖에 없었다.
| 오는 13일부터 시행되는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탑승시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다. 12일 오후 전동킥보드를 이용하기 위해 부피가 큰 헬멧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는 모습.(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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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전동킥보드를 빌린 뒤 ‘합법적인’ 자전거 우선도로로 달렸지만, 속도 한계가 있던 탓에 뒷차는 경적을 울리다 전동킥보드 옆을 ‘쌩’ 하고 지나갔다. 전방에 정차된 차량이 보여 차선을 살짝 바꿔 비켜가려 할 때는 뒤에서 접근하는 차량과 충돌할 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킥보드에 내려 인도 위로 올라 끌고 걸어갔다.
다시 도로 위로 올랐다. 한참을 달리다 이번에는 차도가 하나 둘 줄어들더니 점점 차량의 밀집도가 높아졌다. 뒤로 차량 여럿이 긴 꼬리를 그리며 거북이처럼 기어갔다. 아무리 가속 버튼을 눌러도 속도는 20㎞에 불과했다. ‘도로 위 민폐’가 된 심정이 들었다.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다시 전동킥보드에서 내려 끌고 인도 위로 올랐다.
아직 국내에선 자전거 도로 등 인프라 구성이 미흡하고, 자전거가 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 상식이 아직 자리잡지 않았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전국 전체 도로 대비 자전거도로 설치 비율은 약 17.6%에 불과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전동킥보드를 주차했다. 불과 4~5㎞ 거리밖에 운행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먼 거리를 운행한 것만큼 몸이 피로했다. 서대문역에서 공덕역까지 총 30분 걸렸으나 킥보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기록된 주행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탄 시간보다 인도 위에서 질질 끌고 다닌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다. 셔츠가 젖어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착용하고 있던 헬멧을 벗어 한쪽 겨드랑이에 끼웠다. 남은 하루 동안 헬멧을 들고 거추장스럽게 돌아다녔다.
| 도로교통법상 전동킥보드는 자전거 도로, 차도 가장자리를 이용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결국 도보위에서 전동킥보드를 끌고 다닐 수밖는 상황이 수차례 발생했다.(사진=이용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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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2일 현재 기준으로도 전동킥보드 인도 주행은 불법으로 과태료 3만원이 부과된다. 인도 위 주행을 법으로 금지해도, 사람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인도를 달렸던 것은 차도에서도 인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전동킥보드의 모호한 지위 때문이다. 13일 이후에도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전과 똑같이 전동킥보드가 인도로 쏠려 보행자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우려, 기존의 법에 전동킥보드를 욱여넣기보다 ‘새로운 모빌리티’라는 점을 인지하고 법·제도 개정에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신형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시속 25km를 주행하는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에 위협을 느끼고, 반대로 인도를 걷는 사람에게는 위협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전동킥보드는 자동차에는 피해자고, 보행자에게는 가해자인 애매한 위치”라며 “교통수단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신규 모빌리티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