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득국가, 韓모델 배워야…'창조적파괴' 필요"

정두리 기자I 2024.12.16 17:52:07

한은·AMRO·IMF 개최 ''역내 경제협력·금융안정 포럼’
WB 이코노미스트 “韓, 해외기술 도입 기반으로 혁신 ‘성공’”
''노벨경제학상'' 존슨 "AI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중소득 국가가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려면 과거 한국이 달성했던 구조적 전환을 성공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외에서 기술과 생산 방식을 학습하고, 이를 경제 전반에 확산시킨 한국의 혁신 사례를 벤치마킹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기 기술 혁신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과 관련해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를 지양하고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인더미트 길(Indermit Gill)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개발경제학 수석 부총재가 16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역내 경제협력·금융안정 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AMRO-Asia 유튜브 캡처)
◇“중소득국가, 한국의 혁신 정책 방식 설계해야”

인더미트 길(Indermit Gill) 세계은행(WB)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개발경제학 수석 부총재는 16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역내 경제협력·금융안정 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중소득 국가들이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려면 과거 한국이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에 달성했던 기적과 같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B가 올해 발간한 ‘2024년 세계개발보고서 : 중진국 함정’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많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에 진입 후 고소득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WB는 국가를 △저소득 국가(이하 1인당 국민총소득(GNI) 기준, 약 1200달러 미만) △하위 중소득 국가(약 1200달러~4500달러) △상위 중소득 국가(약 4500달러~1만 4000달러) △고소득 국가(약 1인당 소득 약 1만 4000달러 이상) 등 네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이러한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고소득 국가로 전환한 대표국으로 제시됐다. 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해외 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빠르게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반면 브라질은 혁신으로 도약하려 했지만, 외국인 투자(FDI)와 무역을 제한하며 생산성이 오히려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중소득 국가는 성장 둔화를 비롯해 구조적 변화와 국제 환경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에 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소득 국가들이 ‘창조적 파괴’ 이론에 기반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산업은 파괴되지만, 이에 적응하며 나타난 신산업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혁신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경제가 발전한다’는 성장 이론이다. 지속적 생산성 제고와 경제성장을 위해 낡은 제도와 관습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소득 국가가 고소득 국가로 나아가려면 해외에서 기술과 생산 방식을 학습하고 이를 경제 전반에 확산시키는 단계와 자국 내에서 글로벌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내부적 저항(기득권 세력)과 같은 구조적 제약이 주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과거 한국보다 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16일 오전 서울 중국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4 ASEAN+3 경제협력·금융안정 포럼. Krishna Srinivasan(왼쪽부터)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Kouqing Li AMRO 소장
◇“AI, 사회적 양극화 심화할수도…노동 친화적 기술 지향해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AI 시대에서의 기술과 글로벌 불평등’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AI 기술의 부작용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AI는 일하는 방식과 기회 분배를 변화시킬 것이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심오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AI가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가령 헨리 포드의 자동차 산업 혁명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많은 새로운 작업을 창출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이 지급됐고, 이는 생산성 증가가 사회 전체에 혜택으로 전달된 사례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AI는 주로 자동화 기술로, 인간의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정신적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 기술 개발 방향은 사회, 기업, 정부의 리더들이 결정하는데, AI는 고학력자들에게 유리하게 개발되고 있다면서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사무직 작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존슨 교수는 “AI는 일부 직업을 보완하고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 작업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도 크다”면서 “AI는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학력자 등 취약층에게 도움이 되는 혁신으로 발전하는 즉, ‘노동 친화적(pro-worker) AI’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이 AI와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직업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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