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이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첫 한은 총재라는 점에서 시장의 기대를 받으며 출발했다. 그러나 1년간 세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가 적절했느냐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것은 물론 정부의 입김에 휘둘렸다는 비난마저 나온다.
◇ 2차례 깜짝 금리인하에 독립성 의심
이 총재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금리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면 2~3개월 전에 시그널(신호)을 줘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은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임자인 김중수 전 총재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터라 이 총재의 선언은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7월 “향후 성장경로에 하방리스크가 다소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하고선 불과 한 달 뒤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25%로 인하했다. ‘2~3개월 전에 시그널을 줘야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올 3월에도 시장의 전반적인 전망과는 달리 기준금리를 1.75%로 전격 인하하며 사상 처음 1%대 금리 시대를 열었다.
이 총재가 취임했을 때 시장에선 그를 ‘매파’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세 차례의 금리 인하를 거치면서 ‘비둘기파’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시장 참가자는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두 차례에 걸친 깜짝 금리 인하는 한은의 독립성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활성화 압박에 못 이겨 금리를 내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해 9월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있었던 이 총재와 최 부총리의 ‘와인 회동’은 유명하다. 당시 회동 직후 최 부총리는 “한은 총재와 금리의 ‘금’자도 얘기 안했지만 ‘척하면 척’”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 총재가 펼친 통화정책에 대해 “불분명한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평상시에는 금리 인하를 안 할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의 독립성이라는 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 당사자들이 지켜내야 하는,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독립성 훼손에 빛나지 못한 성과
이 총재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지금의 경제 상황에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이 총재 취임 직전인 지난해 3월 108에서 올해 3월 101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1에서 77로 하락했다. 3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물론 불경기가 이 총재 탓은 아니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 국제유가 하락 등 대외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용됐던 게 사실이다.
이 총재의 성과도 분명하다. 취임 직후 조직안정에 초점을 맞춘 인사를 단행한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조직개편을 통해 거시 전망 예측성을 강화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M) 한도를 두 배 증액하는 등 금융안정망 강화에도 힘썼다.
그러나 한은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독립성이라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조직개편 했을 때 성과는 없다. 겉으로 화장하는 효과 정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