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공학계 석학과 산업계 분야별 전문가들은 K-반도체가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 간 경쟁 체제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진단하고 나섰다. 이대로라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리고, 한국 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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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위원장인 이혁재 서울대 교수는 이날 기조발표에서 “우위를 보이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은 평준화 시대로 진입했고, 해외 기업과 기술력 격차는 매우 좁아졌다”고 진단했다. 반도체가 국가별로 국가 안보 산업으로까지 여겨지면서 각국은 치열한 경쟁체제에 따른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지원은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 반도체는 선도적 투자 경쟁력을 잃어가고, 투자 이익률이 낮아지며 투자의 악순환 고리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은 취약하고, 팹리스와 패키징 산업은 성장 기반이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우수 인재들은 해외로 유출되고 불필요하고 중복되는 규제만 늘어나고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위기 상황을 하나씩 짚었다.
그러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조업을 지키고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새로운 시장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에 과감한 투자를 추진하고, 인재 유입을 위한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메모리 기술·첨단 패키징 기술 등 선제 기술을 개발하고 시설에 적기 투자를 위해서는 300조원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원활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반도체 소부장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지원 △소부장 기업의 수도권 규제 완화 △환경 규제 및 인허가 문제 해소 등을 꼽았다. 첨단 패키징 기술 확보와 생태계 구축을 위해 대규모의 전문 공공연구기관 구축도 제안했다. 국내 팹리스부터 소부장, 패키징까지 국내 반도체 기업의 R&D 지원을 위한 재정 지원도 20조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20조원 투자는 20년 뒤 300조원의 경제 효과를 가져오리라 예상했다.
업계에서 요구가 많은 근로시간 규제에 대한 언급도 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차세대 기술 확보의 필요조건인 R&D에 ‘올인’해야 하는데, 근로시간 규제 탓에 시간을 더 낭비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비밀 병기인 부지런함이 없어지고 있다”며 “30분만 더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퇴근하고 다음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속도 경쟁인 반도체 산업에서 속도를 지연시키는 원인인 주 52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재 유입을 위해 사학연금과 같은 반도체 특별 연금법이 필요하다는 제언 역시 나왔다. 또 외국인 대상 대학 학과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 우수 인재를 유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