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교과서 수정요구는 정당…정권따라 춤추는 교육부 잣대가 문제

신하영 기자I 2019.06.26 15:37:33

`교육과정과 다른 교과서 수정하라` 교육부 요구는 정당
집필자 거부하자 무리수…"교육부 과장 혼자선 못할 일"
집필자 "같은 교육부가 2015·2017년 서로 다른 요구해"
박근혜땐 `대한민국 수립`…文정부선 `정부수립` 요구
교육계 "이 참에 교과서 수정절차 보완해야" 지...

자유한국당 전희경(왼쪽부터), 김한표, 곽상도 의원이 26일 오후 교육부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불법 수정했다는 혐의로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고발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고발장을 들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신중섭 기자] 검찰이 초등학교 6학년 국정 사회교과서 수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교육부 공무원 2명을 기소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해당 공무원들은 집필책임자가 수정을 거부하자 지인을 통해 관련 민원을 접수시키고 집필자 도장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교육계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저지르지 말아야 할 불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집필자 동의 없이 무리하게 수정하려다 덜미

26일 교육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교과서 불법 수정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사문서위조교사 등)로 당시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장 A씨와 연구사 B씨 등 담당 공무원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집필자 동의 없이 무리하게 교과서 수정을 강행하다 덜미가 잡힌 셈.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2017학년도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에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된 부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키로 하고 B씨에게 관련 민원을 접수시키도록 지시했다.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수정할 경우 정치권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근현대사에서 1948년을 규정하는 사관은 보수와 진보로 갈린다. 뉴라이트 등 일부 보수진영은 1948년 8월 정부 수립 시점을 대한민국이 건국된 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에 이미 대한민국이 수립됐기에 1948년은 정부 수립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B씨의 지인인 교사 C씨는 국민신문고에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쳐야 한다는 민원을 접수했다. A씨 등은 이를 바탕으로 교과서 수정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집필책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가 교과서 수정을 거부하자 박 교수를 배제한 뒤 수정작업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A씨 등은 교과서수정협의회에 박 교수가 참석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의 도장까지 임의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교육부 불법행위 함구한채 수정 당위성만 해명

교육부는 교과서 수정과정에서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수정의 당위성만 강조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25일 “초등 사회교과서는 교육과정에 맞게 수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제시한 집필기준(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따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된 부분을 수정한 것이라며 “교육과정 취지에 맞게 수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부 해명대로 논란이 된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의 수정 시점인 2017년에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됐다. 교육과정은 국가적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교육내용을 큰 틀에서 규정한 것.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이에 맞춰 입시제도와 교과서 집필기준이 바뀐다. 2009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교과서를 기술토록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근거로 박 교수에 대한 수정요구가 정당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문제는 같은 교육과정이 적용됐음에도 불구, 정권에 따라 교육부가 제시한 교과서 집필기준이 달랐다는 점이다. 교과서 집필책임자인 박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도 교육부로부터 ‘정부’를 빼고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 당시에도 박 교수는 수정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2015년 하반기에도 교육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 달라고 했지만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서술해야 하기에 이를 거부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직후 교육부가 다시 수정을 요구하자 이 때는 이를 받아들여 대한민국 수립으로 교과서 내용을 고쳤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적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논란이 된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의 적용시점은 올해부터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교육부는 개정 교육과정의 적용시점이 도래하지 않았음에도 박 교수에게 무리하게 수정을 요구한 것.

◇교육계 “이 참에 교과서 수정절차 보완해야” 요구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박 교수에게 다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권이 바뀌자 윗선 입맛에 맞게 교과서 재수정을 추진하며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

이를 두고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다”며 “교과서 수정 강행은 교육부 과장선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 과장급 직원과 연구사만 기소하고 윗선 개입을 밝히지 못한 검찰수사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교육계에서는 정권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집필기준이 문제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한 대학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집필책임자 동의를 얻지 않고 수정 절차를 밟은 것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교과서 내용이 교육과정이나 집필기준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집필진이 수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필요한 절차를 담은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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