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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공SW사업 대기업에 개방했지만…업계 "품질개선 핵심 빠졌다"

임유경 기자I 2024.01.31 18:01:56

700억 이상 사업, 대기업 참여 허용…중기 상생정책 포함
사업대가 상향 두루뭉술…과업변경 대가조정도 없어
업계 "품질 저하 원인에 대한 근본적 대책 안 보여"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상호출자제한(상출제)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가 11년 만에 가능해졌지만 업계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정부는 공공SW 품질을 높이기 위해 7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공공SW 품질을 떨어뜨린 근본 원인은 ‘과업변경에 따른 대가 지급’인데 이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과업 변경에 따른 정당한 대가 지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품질 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대기업이 공공SW 사업에 돌아올 이유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지=디지털행정서비스 종합대책 캡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1일 공공 SW사업의 경쟁 활성화와 품질 제고를 위해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강도현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책 설명 브리핑을 통해 “국민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SW사업에 대해 기업규모와 상관없이 사업자의 참여를 확대해 경쟁을 통한 품질 제고를 유도하기로 했다”고 제도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2004년 중소·중견 기업이 공공SW 시장에서 역량을 키우고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입됐다. 이후 2013년 상출제에 속한 기업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의 참여를 제한하도록 개편됐고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다만 최근 5년간 1000억원 이상 사업의 90%는 대기업이 신기술 도입 등의 예외를 인정받아 수행해 왔기 때문에 사실상 1000억 이상의 사업은 대기업 참여 시장으로 여겨져 왔다.

과기정통부는 이번에 SW진흥법을 개정해 예외 심의 없이도 700억 이상 사업에 상출제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할 계획이다. 대형사업에서 최적의 사업자를 선정해 품질제고를 유도하겠다는 판단이다.

공공SW 품질 문제 해결 될까? ‘글쎄’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공공SW 사업의 품질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품질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인 합리적인 대가 산정과 과업 변경에 따른 대가 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어서다.

공공SW 대기업참여제한 완화와 함께 발표된 ‘디지털행정서비스 국민신뢰 제고 대책(종합대책)’에는 공공SW 개발 대가기준을 임금·물가상승률과 산업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향하고, 과업 변경 심의 가이드라인을 연내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가기준을 상향한다고만 표기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다. 강 실장은 대가 기준에 대해 “정부합동 대책에 대가 기준을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도 굉장한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라며 “실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몇 퍼센트라고 현 단계에선 제시하긴 어렵다”고 했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 부회장은 “정부가 공공SW사업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 발표의 의미가 있지만 대기업이든 중소중견기업이든 공공SW 사업을 통해 실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제도개선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현재 노임단가는 직무별 단일단가 체계이고 그동안 물가상승률과 인금인상률도 반영이 안되어 있는 등 문제가 많았다“며 ”과기정통부뿐 아니라 재정당국인 기재부를 포함해 다부처가 SW 대가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과업 변경에 따른 대가 조정은 아예 빠져 있어 ‘맹탕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발주처가 추가 과업을 요청하는 일이 빈번한데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다면 결과적으로 품질이 악화될 수밖에 없어서다. 수익성 개선 없인 대기업이 돌아올 유인도 떨어진다.

IT서비스 업계 한 관계자는 “공공SW에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과업이 변경돼 추가로 업무를 했는데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라며 “대기업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재 같은 구조에서 다시 공공사업을 키울 이유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과업 변경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해선 “이미 가이드라인이 있는 데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라며 “과업이 변경돼 예산 추가로 요청하면 감사를 받기 때문에 소극행정하는 상황인 만큼 차라리 정당한 과업 변경이라고 인정되면 감사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소중견기업 반발 크지 않을 듯

중소중견기업의 반발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700억 이상의 사업 중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으로 사실상 대기업 주도 시장이기 때문. 강도현 실장은 “이 구간은 이미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어 중소업체에 미칠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국민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사업들이 속해 있어 개정을 통한 기대 효과는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대기업 참여 제한을 풀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는 사업구간을 현행 20억원 미만에서 3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시켰다.

업계에서도 이번 개선책에 따른 대·중·소 업체 간 갈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 부회장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참여해 사업의 리스크 관리를 하면 오히려 안정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반기는 분위기다. 중견기업들은 대기업 참여를 견제하고 있긴 하지만 컨소시엄을 통해 대기업과 공동으로 사업을 수행할 경우 역시 리스크 관리 부담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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