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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이상한 ‘치킨값 잡기’ 소동...'MB 망령'?

김상윤 기자I 2017.03.16 15:50:57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MB시대의 망령이 다시 떠돌고 있다.”

관가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이명박 정부 시절 유가 상승을 빌미로 물가를 잡으려는 정부의 ‘관치(官治)행정’이 다시 ‘오버랩’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당시 ‘52개 생필품을 묶은 ‘MB물가지수’를 만들고 ‘배추과장’ ‘샴푸과장’ 등 담당자를 정해 물가 관리에 나섰다. 공정거래 질서의 확립이 유일무이한 목표로 자율 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위원회’로 탈바꿈시켜버렸다. 하지만 물가는 거꾸로 반응했다. 집중관리품목이 오히려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결과적으로 MB물가지수는 실패했다.

‘MB시대의 망령’이 다시 돌아온 것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의 ‘치킨값 잡기 소동’ 탓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1위인 제너시스 BBQ가 가격을 인상하려고 하자 노골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닭고기 가격 상승을 빌미삼아 치킨값을 올리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BBQ가 한번 올리면 다른 업체 가격 역시 덩달아 따라가면서 전체 가격을 끌어올린다고 꼬집었다. 이에 기업의 ‘저승사자’격인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의뢰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BBQ는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고 농식품부는 대통령 탄핵 이후 어수선한 시절에 정부 역할을 충실히 했다며 의기양양해하고 있다.

‘치킨값’을 잡았으니 모든 게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경쟁법을 다루는 대다수 전문가의 목소리다. 정부가 칼을 휘둘러야 할 시장과 아닌 시장은 구별돼야 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은 그야말로 ‘완전경쟁시장’이다. 공정위의 가맹희망플러스 홈페이지에 등록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2016년 기준)는 무려 778개나 된다. 상위 15개 업체만 빼서 보더라도 매출액 기준(2014년 기준)으로 BBQ의 시장점유율은 13.1% 수준으로 교촌치킨(15.6%)보다 낮다.

BBQ의 가격 인상이 시장에 문제를 일으킬 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됐을 때 얘기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상위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초과하거나 상위3개사의 점유율이 75%를 넘는 기업을 말한다.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인상하면 시장에 왜곡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에서는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치킨시장은 독과점 시장이 아니라서 점유율 상위 업체가 가격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가격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미 7500원짜리 저가 브랜드를 지향하는 상품도 많다. 소비자 선택권이 많은 터라 가격을 올리더라도 소비자가 외면하면 결국 사업자가 실패를 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상위 15개 업체 매출 추이. (자료: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단위:천원)


농식품부가 우려하는 카르텔(담합) 가능성도 완전경쟁시장에서 상당히 떨어진다. 선도업체가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고, 후발업체가 이에 동조해 선도업체 가격을 단순히 모방한 경우를 ‘의식적 병행행위(conscious parallelism)’라고 부르는데 이는 독과점 시장에서 가능한 얘기다. 치킨 시장은 답합을 하더라도 수많은 브랜드와 가격이 치킨 시장에 형성돼 있어 효과를 보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만약 담합을 하더라도 업체들이 ‘합의’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때는 공정위의 칼로써 해결하면 될 문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카드는 그야말로 관치행정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무조사는 그야말로 세금 탈루 혐의가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가격을 올린다는 이유만으로 세무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엄포를 내린다는 것은 정부가 필요하면 언제든 기업을 통치하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도 관치경제의 탓이 아니었던가.

AI로 계란값 파동에 구제역까지 겪으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농식품부가 다급했던 마음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려면 타깃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오히려 지나친 규제로 제대로 된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지 시장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잘못된 관치는 시장 시스템의 적이 될 뿐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 눈치만 보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시장 자율 시스템에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BQ 말대로 프랜차이즈 업주들이 이익이 남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면 그 손해는 누가 메워줄 것인가. 부당한 정부 개입이 많아질수록 법과 제도에 의한 관리·감독은 소홀히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인위적인 물가 통제에 나설 게 아니라 공정 경쟁에 기반한 시장에 의해 물가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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