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탈리아 고급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는 이르면 내년 말을 목표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 기술을 적용한 신차 개발을 협의 중이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업체에 자동차 기술을 전수하던 유럽의 유서 깊은 자동차 브랜드가 이제 중국 기술을 활용해 신차를 개발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마세라티의 모회사 스텔란티스는 중국 화웨이, JAC자동차와 마세라티 신차 개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말 출시될 마세라티 신차에 화웨이의 스마트카 기술을 적용하고 ‘하모니 인텔리전트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방식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 자동차 회사가 중국 자동차 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는 건 이제 더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국적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는 이미 지난 2023년 중국 전기차 회사 립모터에 대한 15억유로(약 2조 3000억원) 투자를 통해 협업 체제를 갖췄고, 연내 스페인 공장에서 립모터의 전기 SUV ‘B10’ 생산·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오펠의 신형 SUV에도 립모터 인터내셔널 조달 부품을 적용한다.
독일 폭스바겐도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의 전기·전자 아키텍처(CEA)를 적용한 중형 전기 SUV ‘ID.아우라 T6’ 사전 계약을 시작했다. 폭스바겐이 지난 2023년 샤오펑 지분 4.99%를 인수하며 시작된 협업이 3년 만에 첫 결과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 토요타 역시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차세대 전기 SUV를 내년 가동 예정인 중국 상하이 렉서스 전기차 전용 공장에서 일본 공장보다 먼저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렉서스 신차를 일본 외 지역에서 먼저 생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와 공동 개발한 S클래스 기반 레벨4 로보택시를 연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시범 운행할 예정이다. 벤츠는 이미 지난해 중국 현지 전기 세단 CLA에 모멘타의 주행보조 시스템을 적용했는데, 이젠 중국 밖에서 최고급 세단의 자율주행 실증으로 확장한 것이다.
유럽과 일본 등지의 전통 자동차 브랜드는 이전에도 중국 기업과 합작해 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기업이 전동화와 자율주행 부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오히려 전통의 서구 기업이 개발 기간과 원가 절감 등을 위해 중국 기업의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르노코리아는 지난 2022년 지리그룹과의 협력과 함께 지리그룹과 볼보가 공동 개발한 모듈형 차체 플랫폼(CMA)을 중형 SUV ‘그랑 콜레오스’에 적용했다. 이렇게 나온 그랑 콜레오스는 지난해 내수 판매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KG모빌리티도 지난해 4월 중국 체리차와 T2X 플랫폼 기반 중·대형 SUV 공동 개발에 들어갔고 지난달 해외 시장을 겨냥한 두 번째 공동개발 모델에 착수했다.
현대차가 내년 북미 등 글로벌 시장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연장형 전기차(EREV)도 중국 자동차 업계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현대차의 EREV 신모델은 현대차 독자 기술로 개발되는 것이지만, 엔진으로 전기를 생산해 주행거리를 대폭 늘리는 EREV의 상업화 가능성을 보여준 건 리오토를 비롯한 중국 자동차업계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시장을 넘어 미래차 기술 공급처로 변화하는 중”이라며 “중국의 산업 생태계를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그만큼 플랫폼과 소프트웨어의 지식재산권과 생산 주도권을 어떻게 지킬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