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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반도체 자료, 맘에 안 들면 추가 조치"…美 시나리오는

김상윤 기자I 2021.11.09 18:02:47

삼성·SK, 민감한 고객 정보 제외한 수준서 제공
美, 1 대 1 또는 추가 공통자료 요구 가능성 커
최악의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 활용 관측도
전문가들 "경제단체·정부, 美 대상 총력전 펴야"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뉴욕=김정남 특파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반도체 정보를 제출하며 일단 급한 불은 껐다. 다른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고 자료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이 추가로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여진은 남아 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활용한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내 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영상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 들고 있다. (사진 = AP연합뉴스)
삼성·SK “고객 관련 정보 제외해 자료 제출”

9일 미국 상무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가 요청한 반도체 공급망 자료를 마감 시한인 8일(현지시각) 오후 제출했다. 삼성전자 측은 “미 상무부 가이드라인에 맞췄다”며 “다만 고객 관련 정보는 계약상 공개가 불가능해 상무부와 협의를 거쳐 포함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도 “고객과 신뢰 관계를 지키는 선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했다”고 했다.

앞서 미 정부는 반도체 부족 사태가 지속하자 공급망 상황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겠다며 지난 9월24일 글로벌 반도체 업계와 화상 회의를 열고 ‘45일 내로 반도체 재고와 고객사 등 공급망 정보를 담은 설문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었다. 애초 반도체 재고 수량과 주문 내역, 제품별 매출, 고객사 정보 등 26가지 문항에 대한 답을 원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영업기밀 제출에 난색을 표하자 세부 정보 대신 자동차용·휴대전화용·컴퓨터용 등 산업별로 뭉뚱그려 자료를 제출하는 방안을 양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첫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리스크는 남아 있다. 미 상무부는 이날까지 제출된 자료들을 검토한 뒤 추가적인 요구 사항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목적이 반도체 병목 현상의 원인을 식별하는 것이어서 현재까지 제출한 기업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반도체 공급망 그림’이 그려질지가 관건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상무부는 필요 시 해당 기업들과 일대일 방식으로 자료를 확인하거나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공통자료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정보 제출에 대해 기업 자율에 맡겼지만 제출한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정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은 마감 시한인 이날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제출한 자료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으면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러만도 장관은 최근 밀컨 컨퍼런스에서 “반도체 생산 확대는 국가 안보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취해 주목받았던 강경파 인사다. 그는 “반도체 공급난은 6개월, 1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반도체 공급망 그림’을 그려놓고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반도체 자체 생산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이 한국산 철강의 대미(對美) 수출을 가로막았던 무역확장법 232조도 꺼낼 것이란 시나리오도 있다. 특정 수입 품목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수입량 제한, 관세 부과를 할 수 있는 규정이다. 현재 반도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수입량 제한 카드는 바로 꺼내 들지 않겠지만, 미국 정부가 강제적으로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송기호 국제통상전문 변호사는 “미국은 향후 국가안보에 따른 수출입 제한 조치인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반도체 분야에 지속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국제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주도로 개편할 때까지 리스크가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별 기업 대응 어렵다…협회·정부 외교전 나서

개별 기업만으로 미국의 무차별적 요구에 대응하기가 어렵자, 경제단체와 정부도 미국 정·재계, 관을 대상으로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미국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와 공동으로 ‘33차 한미재계회의 총회’를 열고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관련 한미 동맹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미 양국 경제인 인사들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전략분야의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민감한 기밀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창수 회장은 “한국과 미국이 힘을 합쳐 무너진 세계 경제 질서를 바로잡고, 자유로운 무역환경을 재건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국 기업인은 공동성명서를 통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전략 분야에서 공급망을 재건하기 위해 공동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며 “공급망의 실질적인 병목 점을 파악할 수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부터 11일까지 2박3일간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러만도 상무부 장관 등을 만날 계획이다. 문 장관은 러만도 장관에게 한국 기업이 낸 자료를 소개하면서 영업 기밀 등의 이유로 추가 자료를 내기 어려운 사정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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