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청와대는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졌다. 13일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안정적 과반의석 확보가 불발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당초 ‘양’(안정적 과반 확보) 보다는 ‘질’(진실한 사람들)을 바랐다. 그러나 선거결과 뚜껑을 열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를 1년10개월가량 남겨두고 임기 막바지까지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강력한 ‘친박(친박근혜)계’ 집권여당을 원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장 집권여당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우려다. 새누리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친박계와 비박(비박근혜)계 간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졌고, 이르면 다음달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당의 분란은 최고조로 치달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휩싸였던 청와대에 대한 비난 여론도 비등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가 일여다야(一與多野) 체제 속에서 치러진 만큼 박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뼈아픈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박계 위주로 채워진 중진들은 그동안의 ‘수직적’ 당·청 관계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나설 공산도 커졌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에 나설 테고, 이는 자칫 레임덕(권력누수)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히려 청와대가 어떤 식으로는 선제적인 ‘관계 재설정’에 나서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비박계의 입지 강화를 수용하더라도 유승민 등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을 윤허해 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번 선거가 박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였다는 점에서 야권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론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되는 점도 걱정거리다. 특히 야권의 ‘경제심판론’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등 그동안의 성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청와대가 국민의당과의 정책연대 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박 대통령이 공을 들여온 노동개혁 4법 및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 등 이른바 ‘박근혜표 중점법안’ 처리가 20대 국회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불발되는 걸 마냥 바라볼 수는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다. 실제로 국민의당은 의회권력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사안별로 거대 양당 간의 협력과 견제를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이 아직 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견고한 4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레임덕’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이 나오는 만큼 향후 당·청 관계나 대야(對野) 관계에서 주도권을 쉽게 빼앗기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이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향후 국민과의 접촉면을 강화하는 ‘소통’ 정치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