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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토교통부는 국토·도시계획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협의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부 자문 회의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토·도시계획을 바꾸겠다는 방향성을 갖고 (협의회를) 여는 건 아니”라면서도 “대선 정국에서 나오는 여러 얘기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도시계획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용역도 매년 발주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나 인구 감소, 비대면 소비 확산 등 시대 변화를 도시계획 제도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올해도 연구 예산으로 8억5000만원을 배정했다.
그간 국토부가 진행했던 도시계획 제도 개선 용역에선 용도지역 체제 개편 필요성이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도시계획 제도를 손본다면 용도지역제가 1순위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도시계획 제도 핵심이 용도지역제이기 때문이다.
용도지역 제도는 토지별로 용도를 정해 건축 가능한 건물 종류·높이(용적률), 개발 밀도(건페율) 등을 규제하는 제도다. 도시 지역에선 크게 주거지역과 상업지역·공업지역·녹지지역으로 용도지역이 나뉜다. 현행 용도지역 제도는 2002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 제정 이후 지금까지 큰 틀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 못 쫓아가는 용도지역제, 융복합지역 신설·종 세분 필요
문제는 20년째 용도지역제의 큰 틀이 유지되면서 시대 변화를 못 쫓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주거지역만 해도 과거 개발됐던 저밀주거지가 노후화되면서 정비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용적률 등 용도지역 규제에 막혀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용도지역 종(種) 상향(용도지역을 규제가 더 느슨한 용도로 바꾸는 것) 요구가 빗발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엄격한 용도지역 구분이 실상 의미를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한남동이나 연남동처럼 주거지역이 사실상 상업지역화하거나 반대로 오피스텔 등의 형태로 상업지역에 주거지 역할이 커지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공업지역의 경우 높은 지가 때문에 공장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 순수 공업용 건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론 용도지역제가 공간 효율성이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론 용도지역 세분화나, 업무지역·복합용도지역 등 새로운 용도지역 신설 등이 거론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발이나 토지 활용이 기존 용도지역제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제한적으로 적용 중인 입지규제최소구역 등을 확대해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면 어떤 용도의 건물도 입주할 수 있는 융복합지역 신설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용도지역제라는 개념은 산업화 시대 용도 분리를 위해 만들어졌다. 4차 산업혁명과 탈산업화 시대에 맞춰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며 “혼합적 토지 이용으로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용도지역제가 지나치게 완화될 경우 난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진유 교수는 “용도지역제 허점을 파고든 난개발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도 함께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