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있으면 과세" Vs "실체 없다면서 웬 세금"…가상화폐 과세논란 격화

한광범 기자I 2021.04.26 18:10:20

"보호 못해" 은성수 발언 도화선…정부 과세 반발 이어져
"금융자산 아냐" 국제회계기준위 해석에 기타소득 분류
특금법 제정 거래소 관리 강화..과세 용이 투자자 간접 보호
정치권 "가상화폐 제도화, 과세 유예" 목소리 커져

(그래픽=이미지투데이)
[세종=이데일리 한광범 이명철 이정현 기자]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일파만파다. 일부 투자자들은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이유로 투자자 보호는 하지 않으면서 세금만 걷어간다고 반발하고 있다.

26일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에 올라온 은 위원장 자진사퇴 청원글은 청원 3일 만에 13만명을 넘어섰다. 청원자는 ‘투자자는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며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고 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을 도화선으로 가상화폐 과세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복권 당첨금, 미술품’처럼 기타소득으로 분류

정부는 다른 기타소득과 마찬가지로 투자에 대한 보호는 불가능하지만 이와 별개로 세금 부과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의 가상화폐 과세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가상화폐 소득을 복권 당첨금, 미술품과 같은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는 등 세부적인 과세안도 마련해놨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동산, 비상장주식, 채권 등 다양한 차익에 대해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가상화폐만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소득에 대한 과세는 주요 20개국(G20)이 지난해 6월 정상회의에서 가상화폐를 자산의 일종인 암호자산(Crypto asset)으로 분류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에 대해 다양한 논란이 정리되며 정부로선 자산으로서 분류하는 부담을 덜게 된 것이다.

이보다 앞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산하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는 2019년 10월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기업의 지분이나 다른 사람의 현금 등 금융자산을 얻을 계약상 권리를 갖는 자산으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G20도 이 같은 입장을 지지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성격이 정리된 후 정부는 빠르게 과세 근거를 마련에 나섰고 국회는 지난해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 보고·이용 법률(특금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특금법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가상화폐 사업자 신고제 도입 △고객확인 및 자금세탁방지 의무 부여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실명확인가상계좌 발급 등의 의무를 부여했다.

특금법 통과로 인해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정부 관리 틀 안으로 들어오게 돼 과세가 용이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특금법상 규제장치로 인해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투명성은 대폭 높아져 간접적으로나마 투자자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이후 지난해 7월 과세안을 발표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국회(임시회) 제1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양향자 “가상화폐 과세 유예해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내에서는 가상화폐 자산 과세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자산가치가 없는 곳에 세금을 걷겠다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며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과세를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가상화폐 과세를 1년이상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상화폐는 자산이며 이를 통해 얻은 소득에 대한 과세는 꼭 필요하다”면서도 “아직은 이르며 제대로 된 준비가 먼저다. 준비 없이 과세부터 하겠다고 하면 시장의 혼란만 커질 것”이라 우려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성격도 규정하지 않은채 과세부터 하면 시장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양 의원은 “모든 것을 준비하기에는 1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장의 반발 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조세 저항은 국가를 전복시킨 동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과세는 이미 올해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과세 인프라 등을 감안해 3개월 미룬 상태다. 주식에 이어 가상자산 과세 일정도 차질이 생긴다면 정부 과세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3년부터는 모든 상장 주식 양도차익(5000만원 공제)에 대한 과세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중장기로 가상화폐도 제도권 내에 두고 금융자산과 비슷한 투자자 보호·과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로선 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홍남기 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거래내역이 거의 완벽히 파악되고 체계적으로 되면 금융자산으로 과세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일단 내년에는 기타소득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했다”고 밝혔다.

일부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상장주식에 준하는 기본공제(50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증시 활성화 등을 위해 상장회사에 대해선 다양한 투자유인이 있다”며 “그동안 비과세였던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과세표준이 높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과 정책 일관성을 감안할 때 우선 내년 과세 후 제도 개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로 볼 때는 가상자산도 투자자산으로 인정하고 양도세를 과세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며 “가상자산 과세는 예전부터 예고한 방향인 만큼 최근 투자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정책을 유예하거나 한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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