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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공정 채용 공고에도 부정청탁…채용비리”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2월 이광구(61) 전 은행장 등 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부터 3년간 청탁 명부를 관리하며 임원 자녀 등을 합격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우리은행이 ‘성별·연령·학력 등에 관계없이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내고도 청탁 명부를 두고 일부 지원자를 합격시킨 것은 명백히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라는 입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은행 내 친인척 자녀와 외부기관 고위직 자녀 등을 명부로 만들어 관리했다. 검찰은 채용 명단에 있는 지원자는 본격적인 서류전형 전 ‘필터링’부터 피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필터링이란 △나이 △학점 △자기소개서 분량 등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이에 미달하는 경우 아예 지원서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필터링에서 탈락할 경우 서류전형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검찰은 이 필터링 기준에 따르면 탈락했어야 할 일부 지원자가 청탁 명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류전형을 통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청탁 지원자와 △성별 △학교가 같은 지원자 중 서류전형 성적 하위권에 있는 지원자가 탈락 처리된다.
◇피고인 “필기시험과 달라…다양한 요소 고려 불가피”
반면 피고인들은 “채용은 시험과 달리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진행하는 만큼 이를 채용비리로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달 5일 열린 8차 공판에서 이 전 은행장 측 변호인은 “필기시험은 정량평가인 만큼 상급자가 수정할 수가 없지만 우리은행의 채용은 그런 정량 기준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고측 변호인은 서류 기준도 충족하지 못한 지원자가 필터링을 피해 갔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 “필터링은 업무의 편의를 위한 관행에 불과하다”며 “필터링된 지원자도 충분히 다른 장점이 있을 수 있어 서류를 다시 살펴보고 통과시킨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피고인측은 근무희망지역에 따라 합격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주장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공채 지원 시 근무희망지역을 2지망까지 써내도록 했는데 경쟁률이 높은 지역에서 탈락한 지원자라도 경쟁률이 낮은 지역에 지원했다면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계 의한 업무방해죄’ 인정 여부가 관건
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가 인정받기 위해선 피고인들이 위계를 동원해 채용업무를 방해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직원들이 정당한 과정을 거쳐 만든 합격 명단을 피고인들이 청탁 명부를 근거로 수정한 사실 등이 밝혀져야 하는 셈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2016년 1차 면접 담당자는 “인사 업무를 하던 당시엔 청탁 명부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 지원자 개개인의 배경에 대해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 전 은행장 등 피고인들이 위계를 바탕으로 일반 인사 직원의 업무에 개입했다는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은 “직원들의 진술은 불명확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며 “추천을 받은 지원자 가운데서도 탈락한 사람이 있는 만큼 ‘추천이 곧 합격’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는 위계의 주체와 상대방을 입증해야 해 적용이 쉽지만은 않다”며 “우리은행의 경우는 재판부가 어느 쪽의 말을 사실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채용비리 논란으로 기소된 시중은행 임·직원에 대한 재판들이 현재 진행 중이다. KB국민은행 전·현직 직원들은 지난 10월 26일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서울 서부지법과 동부지법에서 각각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