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윤활유, 미국산 속여 군납한 일당 검거…항공기 추락할 뻔

이승현 기자I 2017.05.25 15:07:58

警·軍, 국내산 저가 윤활유 미국산 둔갑시킨 업체 대표 구속
군 허술한 검수체계 악용해 상표·시험성적서 등위조해 납품
항공기 추락위기에 회항·군함 전자기판 손상 등 피해 심각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질낮은 저가의 트랙터 윤활유를 군의 항공기와 헬기, 군함 등에 쓰일 미국산 특수윤활유로 속여서 공급, 십수억원을 챙긴 군납업체 관계자들이 붙잡혔다. 군이 물자 납품과정을 허술하게 감독한 탓에 가능했던 이 범행 탓에 우리 군의 주요 무기와 장비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국방부 조사본부와 공조수사를 벌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공문서 위조·위조 공문서 행사 등 혐의로 군 부사관 출신인 윤활유 제조업체 대표 이모(58)씨를 구속하고 직원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14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국내에서 제조한 트랙터·오토바이 윤활유에 위조한 상표 라벨을 부착해 미국 유명업체의 특수윤활유로 둔갑시키는 수법으로 34개 품목을 43회에 걸쳐 방위사업청에 납품하며 15억원 가량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군이 미국산 수입품을 검수할 때 성능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수량과 포장상태, 파손 여부 등만 눈으로 확인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그는 모조품 윤활유를 미국산 정품 라벨지를 붙인 용기에 넣고서 미국에 보낸 뒤 방사청이 지정한 해외 야적장으로 옮겼다. 그는 현지에서 허술한 검수를 받은 모조품 윤활유를 국내에 역수입해 위조한 시험성적서와 수입신고필증 등을 제시하며 군에 납품했다.

이러한 가짜 윤활유를 사용한 무기와 장비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공군의 한 항공기는 운항 도중 기체 진동(폭연)과 엔진 실린더 헤드균열 손상으로 추락 위험이 생겨 조기 회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해군 소속의 한 헬기는 장기간 사용하면 기체가 손상되는 위험이 발견됐다. 해군의 한 군함은 방청제(녹 방지 제품) 때문에 추진 제어장치의 전자기판이 녹기도 했다.

이씨는 이 밖에 2014년 12월 유사한 수법으로 국내 한 화력발전소에 국내산 저가 윤활유를 미국산 ‘터빈 작동유’로 속여 납품해 2300만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도 있다. 다만 이 발전소는 아직 모조품 윤활유를 사용하지 않아서 발전설비에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이씨가 방위산업체 등에 가짜 윤활유를 더 납품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방사청에 철저한 검수작업이 이뤄지도록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이모(58)씨가 상표와 시험성적서 등을 위조해 저가의 트랙터 윤활유를 미국 유명업체의 특수윤활유로 둔갑시켜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범행의 개요도. (자료=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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