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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만에 당대회 개최. 아버지 시대에는 한번도 열지 못했던 당대회다. 한세대를 건너뛰어 그 무거운 문을 열고 나온 김 제1위원장의 모습은 김일성 주석과 닮아 있었다. 북한 매체를 통해 보던 김 제1위원장은 늘 인민복을 입은 모습이었으나, 당대회 개회사 영상 속 그는 양복 차림이었다. 검은색 줄무늬 양복에 어두운 뿔테 안경을 쓰고 회색 넥타이를 맨 모습은 김 주석을 연상시켰다.
옷 차림 뿐만이 아니었다. 배를 내밀고 걷는 모습, 젊은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 성대를 눌러서 내는 부자연스러운 중저음, 입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발성법, 연단에 기대 서서 이따금씩 몸을 비트는 듯한 움직임까지 그는 분명히 할아버지 흉내를 내고 있었다.
김 제1위원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다. 집권 5년차를 맞은 그의 나이는 아직 32세. 우리로 치면 대통령 후보 등록도 못하는 젊은 나이다. 그래서 김 제1위원장에 대한 평가에는 여전히 너무 젊고, 자신만의 정치·사상·제도적인 기반을 가지지 못했으며, 불안하다는 우려가 함께 따른다. 그의 집권 이후 초반 4년 동안 숙청된 당과 군, 내각의 간부만 100명이 넘는다는 대북소식통의 전언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김 제1위원장의 ‘할아버지 따라하기’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현재 북한의 모든 사상과 제도의 기반을 다진 김일성 주석, 북한 주민들이 가장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따라함으로써 그 후광을 입으려는 것이다. 더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권위를 높이고 업적을 과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유례 없는 3대 세습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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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제1위원장이 항구적인 전략 노선이라고 천명한 핵·경제 병진노선과 통일 방안으로 제시한 연방제는 모두 김일성 주석의 경제국방병진노선과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을 빼다 박았다. 심지어 사상적으로는 온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역설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종반을 향해 가고 있는 이번 당대회에 대해 “새로울 게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선대에 기대서 상이나 남북관계 등 기존의 성과를 답습하고 반복하려는 것이 보인다”며 “김정은 자신만의 비전을 못 보여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