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차라리 우리가 빚을 탕감해줄 수 있게 하라” 저축은행이 금융당국에 제기한 요구사항이다. 개인회생·개인파산 등을 통해 빚을 탕감받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차라리 자체적인 채무조정으로 조금이라도 상환액을 늘려보겠다는 것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 신용대출에서 개인회생, 신용회복, 파산면책 등 채권 재조정을 받게 된 이는 전체 연체자 중 50~60%를 차지한다. 2014년 말 저축은행 57개사의 개인신용대출 평균 연체율이 12.1%라는 것을 고려할 때 100명 중 6~7명은 채권 재조정을 받는 것이다.
특히 저축은행이 골머리를 앓는 것은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이다. 법원에서 개인회생개시결정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모든 채권추심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대출금액의 75~100% 충당금을, 파산청구문서에 대해선 대출금액의 100%의 충당금을 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손실을 모두 떠안는 셈이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채무비율을 조정하는 신용회복위원회는 3개월 정도면 끝나기 때문에 그나마 사정이 낫고 회수율도 훨씬 높다.
문제는 개인회생 제도를 채무탕감 수단으로 악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은 11만707건으로 2013년보다 4.6% 증가했다. 2010년 5만6972건과 비교해 4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계부채가 증가한 탓도 있지만 수임을 노린 브로커들이 채무자들에게 개인회생 제도를 권유하면서 쏠림현상이 심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저축은행중앙회가 업계의 의견을 모아 자체적으로 원금을 탕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선 이유도 이 같은 쏠림현상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저축은행 자체 채무조정액은 477억원으로 2013년 1466억원에 비해 대폭 줄었다. 2014년은 상반기만 추산한 것을 고려하면 약 400~500억원 이상 줄어든 셈이다. 금융당국도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금이 1000만원 이하인 개인신용대출자에 한해, 최대 50%까지 감면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또 이자감면만 가능하던 지원방식을 확대해 금리 인하, 상환유예, 상환방법 변경, 만기연장 등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원하던 의견이 받아들여졌지만, 저축은행 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라는 반응이다. 자체 채무조정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채무자의 이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 채무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근본 해법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빚을 안 갚으려고 하는 채무자가 많아질수록 대출금리는 높아지고 결국 성실한 채무자들이 부담을 대신 지게 된다”며 “채무를 50% 갚는 것을 조건으로 개인회생을 시켜준다거나 신용회복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거쳐 채무조정을 하는 등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