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논란이 됐던 정부의 늑장 대응이 지난 1일 러이사 베링해 인근에서 발생한 사조산업 원양어선 ‘501 오룡호’ 침몰 사고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를 놓고도 정부 부처 간 조율이 제때 안돼 사고 수습도 늦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2일 국민안전처·해양수산부·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룡호로부터 지난 1일 위성 조난 신호를 접수한 뒤 침몰 사실을 확인하고 러시아 쪽에 구조 요청을 하기까지 30분 넘게 걸린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당일 오후 2시6분 조난 신호를 접수해 4분 뒤 남부해양경비안전본부(이하 남부해양본부)에 확인 지시를 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야 남부해양본부는 본부 측에 침몰 사실을 보고했다. 본부 측은 오후 2시40분에야 러시아에 구조 협조 요청을 했고 각 부처에 침몰 상황을 전파했다.
해당 시간에는 이미 어선의 침몰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이었다. 정부가 밝힌 오룡호 침몰 시간은 오후 2시20분쯤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사고를 인지한 뒤 구조대 출동을 지시하는데만 30분 가량 걸렸다. 남부해양본부 관계자는 “기계 오작동이나 선원들의 실수로 조난 신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빨리 확인해 보고했다”고 말했다.
침몰 사고를 인지한 뒤에도 정부 부처들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사고 발생 초기부터 재난 컨트롤타워를 확실하게 정하지 않아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데다 부처별로 따로따로 대처에 나섰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사고 접수 직후 부처별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며 “밀접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수부는 사고가 발생한 지 4시간이 지난 오후 6시에야 자체위기평가회의를 열고 중앙사고대책본부를 꾸렸다. 해수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영내가 아니라서 어선 사고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며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털어놨다.
국민안전처는 해양경비안전본부의 침몰 상황 전파 이외에는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도 못하고 있다. 구조 업무는 외교부, 사후보상 업무는 해수부가 맡기로 한 것이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해외 재난은 외교부가 컨트롤타워”라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상임 고문)는 “지난달 19일 국민안전처 출범 당시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라고 홍보했던 정부의 주장이 무색할 정도”라며 “재난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는 베링해가 아니라 국내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에 앞서 지난 1일 오후 2시20분께(한국시간) 러시아 베링해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사조산업의 명태잡이 어선 ‘501오룡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 한국인 선원 10명을 포함해 52명이 실종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