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에서 사기로…사모펀드는 그들의 먹잇감이었다

박종오 기자I 2020.07.27 16:06:50

금융위원장도 칭찬했던 팝펀딩
허위 동산담보 평가서류 위조
부실대출 돌려막는 '폰지사기'
사모펀드 통해 개인투자자 유치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혁신 금융의 진짜 정체는 사기였다.

이데일리의 단독 보도(본지 2월 12일 자 ‘[단독]P2P 대출 사기 금융위도 몰랐다’ 기사 참고)는 5개월 만에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 15일 개인 간(P2P) 대출 업체 ‘팝펀딩’의 대표 등 3명을 투자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발표했다.

팝펀딩은 ‘금융 혁신’을 내건 정부 정책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P2P 금융, 동산 담보 대출, 사모펀드 정책은 팝펀딩이 수백억 원대 사기를 저지를 수 있는 텃밭을 제공했다. 불법을 걸러낼 검증 장치는 없었다.

◇ 팝펀딩은 어떤 회사?

(그래픽=이데일리DB)
팝펀딩은 국내 P2P 업계의 맏형 격인 회사다. P2P 대출은 투자자와 대출자를 은행 등 금융기관 중개 없이 직접 연결해주는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다. 팝펀딩은 2007년 첫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누적 대출액이 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6위 업체다.

투자자는 팝펀딩을 ‘착한 금융회사’로 인식했다. 진보 성향의 이색 금융 상품을 많이 선보여서다.

팝펀딩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문재인 펀드’, ‘박원순 펀드’를 출시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26년’도 팝펀딩이 제작비를 모집했다.

현 정부 들어 팝펀딩의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2018년 P2P 업체로 정식 등록하고 1년 만인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팝펀딩을 국책은행의 동산 담보 대출 업무를 대행하는 ‘지정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선정 과정에 참여한 금융위 간부는 팝펀딩의 대출 모델이 “무척 재미있는 사례”라고 호평했다. IBK기업은행이 팝펀딩과 손잡고 정책 대출 상품을 내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말 팝펀딩의 경기도 물류창고를 방문해 ‘동산 금융의 혁신 사례’라고 극찬했다. 팝펀딩은 정부의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은 위원장 방문 뒤 본지 보도 직전까지 두 달 보름여 동안 팝펀딩의 누적 대출액은 약 250억원 늘었다. 하루 평균 3억3000만원씩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 어떤 사기?

자료=검찰


팝펀딩이 처음부터 사기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범죄에 손댄 것은 2년 전부터다.

팝펀딩은 홈쇼핑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상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서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돌려주는 ‘홈쇼핑 동산 담보 대출’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은행 등 기존 금융회사가 담보 가치가 확실하고 돈 떼일 위험이 낮은 부동산 담보를 선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팝펀딩의 대출 상품은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이자 수익을 바라는 투자자를 직접 연결하는 대안 모델로 평가받았다.

팝펀딩은 회사 물류창고에 중소기업의 담보 상품을 보관하다가 홈쇼핑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해 대출금을 회수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선보였다.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재고 보관, 배송, 투자금 회수를 모두 전담했다.

문제는 팝펀딩이 사실상 사업의 전 과정을 담당하다 보니 중간에서 투자자를 속여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팝펀딩은 지난 2018년 2월 담보물 부실 관리, 일부 대출자의 상품 판매 부진, 연체 등으로 145억원가량의 대출 부실이 발생했다. 팝펀딩 대표와 이사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가짜 대출 상품을 만들었다.

둘은 중소기업 34곳에 대출하는 것처럼 허위 동산 담보 평가서를 만들고 서류를 위조해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신규 투자금 554억원을 유치했다. 그리고 이중 약 540억원을 기존 부실 대출을 돌려막는 데 썼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팝펀딩 창고를 방문했던 때에도 팝펀딩의 사기는 진행 중이었다. 2018년 3월 18%까지 치솟았던 팝펀딩의 대출 연체율(전체 대출액 중 한 달 이상 연체액 비율)은 은 위원장 방문 당시 3%를 밑돌았다. 팝펀딩이 대출 사기를 저질러 연체율을 낮췄을 것이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 사모펀드는 무슨 상관?

사모펀드는 팝펀딩의 사기 피해를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다.

현행 정부 지침상 개인 투자자의 P2P 투자 한도는 업체당 2000만원이다. 반면 사모펀드(전문 투자형)는 개인 투자자의 최소 투자액이 1억원 이상이다. 지난 2015년 금융 당국이 최소 투자 금액을 종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며 중산층에까지 투자 접근성이 크게 넓어졌다.

팝펀딩은 대출 부실이 발생한 2018년부터 사모펀드를 통해 개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규제를 우회한 결과 자체 P2P 플랫폼에서 투자를 받을 때보다 최소 5배(2000만원→1억원)나 많은 개인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현행 정부 지침은 사모펀드의 P2P 투자에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아 P2P 업체의 사모펀드 투자 유치 실적은 저조했다. 팝펀딩은 이런 규제의 빈틈도 적극 활용했다.

자비스자산운용·코리아에셋·헤이스팅스자산운용·옵티멈자산운용·JB자산운용 등 5개 자산운용사는 팝펀딩의 대출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고 운용했다. 한국투자증권·신한금융투자·IBK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한화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6개 증권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불량 사모펀드’를 투자자에게 팔았다.

◇ 왜 못 막았나

팝펀딩이 본격적으로 사기에 나선 뒤 본지 보도가 있기까지 지난 1년 10개월간 어디서도 경고등이 켜지지 않았다.

동산 담보 대출과 핀테크를 활성화하려는 금융 당국의 정책 의지는 정작 투자자 보호라는 기본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신생 금융회사가 만든 초고위험 상품이 ‘혁신 금융’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일반인에게 팔려나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이야기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모펀드 자체도 투자자가 투자 대상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며 “이런 펀드 투자금을 담보물 가치를 매기기가 상당히 어려운 동산 담보 대출을 취급하는 P2P 업체에 재투자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적어도 은행에서는 동산 담보 대출을 취급할 때 부실 위험이 크다고 보고 전담 부서와 심사위원을 두고 담보물 평가와 실사, 사후 관리 등을 매우 깐깐하게 한다”면서 “정부가 동산 담보 대출을 적극 권장하지만 과거 ‘모뉴엘 사태’ 등 대형 사기 대출 사건을 겪으며 학습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운용사와 증권사는 팝펀딩이 써준 대로 펀드 상품을 설정하고 판매했다. 팝펀딩은 가짜 서류를 이용해 홈쇼핑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대출 채권(대출 원리금을 회수할 권리)을 사모펀드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운용사와 판매사는 이 대출 채권이 실재하는지 확인하지 않고 자기네 보수만 받아 갔다.

사모펀드의 자산 가치를 평가해 가격을 매기는 사무관리회사와 투자 자산을 보관하는 수탁회사도 허위 서류를 걸러내지 못했다.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운용사와 판매사, 사무관리사, 수탁사가 중간에서 챙긴 수수료는 투자액의 약 2%에 달한다.

팝펀딩 사기 사건은 정부와 금융회사가 같이 초래한 금융 사고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모펀드를 이용한 P2P 대출 규제 회피, 동산 담보 대출 및 사모펀드 운용의 실태 검증 등은 여전히 제도의 공백으로 남아있다. ‘제2의 팝펀딩’이 나올 수 있는 셈이다.

최근 금융 당국은 뒤늦게 국내 P2P 업체 약 240개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도를 바꾸면 규제 백과사전이 될 것”이라며 “규제 강화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피해 규모는



팝펀딩 사기 사건의 피해액은 최소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투자액(설정액) 총 1668억원 가운데 지난 5월 말 현재 투자금 1059억원의 환급이 중단된 상태다. 나머지 609억원도 사실상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팝펀딩 사모펀드에는 개인 투자자 385명이 총 571억원을 투자했다. 1명당 평균 투자액은 1억5000만원 수준이다. 특히 60대 이상이 159명으로 전체 투자자의 41%를 차지했다. 80대 이상도 12명이나 된다.

법인의 투자액은 868억원으로 개인 투자자보다 1.5배 많다. 팝펀딩 사모펀드에 재투자한 펀드가 함께 투자금 환급을 중단하는 등 연쇄 피해가 우려되는 이유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달 초 투자자에게 예상 투자 손실액을 공지했다.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의 예상 손실액은 74.7~85.3%로 나타났다. 1억원을 투자했다면 최대 8530만원을 날렸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팝펀딩 펀드 운용사인 자비스운용 등이 회계법인을 통해 실사한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전체 투자금 1668억원 중 피해액이 1423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검찰도 투자자의 투자금 최소 540억여원이 부실 대출 돌려막기에 사용돼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정확한 투자 피해액과 회수 가능액은 금감원 검사와 자산 재실사 등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검사를 나가서 팝펀딩이 창고에 보관 중인 재고 자산 현황 등을 제대로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피해 보상은

팝펀딩 사모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지난 6월 29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팝펀딩 사기 피해의 일차적인 배상 책임은 팝펀딩에 있다. 현재 팝펀딩은 대표와 이사의 구속으로 사실상 업무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보유 재고를 팔아서 투자금을 일부라도 회수하려면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운용사와 판매 증권사는 “우리도 사기 사건의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다. 검찰은 투자자의 고발에 따라 펀드 운용사와 증권사를 상대로 추가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책임 문제가 더 명확해질 수 있다.

금감원은 검찰 수사 결과와 실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팝펀딩 투자자와 금융회사 간 분쟁 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다. 투자자는 투자 원금 100% 환급을 요구하고 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 “투자금 전액을 물어주라”고 권고한 것처럼 팝펀딩 연계 펀드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감원이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 투자금 100% 배상 결정을 내린 것은 펀드 판매 당시 이미 최대 98% 손실이 난 상품을 가짜 투자 제안서 등을 통해 판 것은 투자자의 착오를 부른 것인 만큼 법상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마찬가지로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도 가짜 대출채권을 편입한 ‘불량 상품’이었던 만큼 무역금융펀드와 동일한 배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금감원의 권고를 금융회사가 무조건 수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임운용의 무역금융펀드 피해금 배상 문제도 판매사가 결정을 보류하며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의 조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정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현재까지 투자자에게 자체 보상안을 제시한 것은 투자 원금의 최대 21%를 돌려주겠다고 한 한국투자증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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