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신경마비는 12개 뇌신경 중 7번 신경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안면신경장애의 하나다. 7번 신경은 눈과 입 등 얼굴근육의 움직임, 미각, 분비기능 등을 조절하는데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안면마비와 함께 눈이 감기지 않거나 미각이 둔해지는 증상이 동반된다. 주로 얼굴 한쪽 근육이 마비돼 틀어지고, 안면부 눈과 입 주변 근육이 비뚤어져 한방에서는 ‘구안와사’ 즉 ‘입이 돌아가는 병’으로 부른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바이러스가 신경을 손상시켜 발생한다. 대표적인 벨마비(Bell’s palsy)는 원인이 없는 특발성 안면마비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단순포진바이러스(HSV)에 감염돼 신경이 손상돼 발생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째로 흔한 람세이헌트증후군(Ramsay-Hunt syndrome)은 대상포진바이러스(VZV)의 활성화로 인해 발생한다. 이 바이러스가 잠재돼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재활성화되면서 안면신경을 손상시킨다. 람세이헌트증후군은 심한 난치성 안면신경마비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일반적으로 겨울에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큰 일교차, 과도한 냉방 등으로 봄과 초여름에도 제법 많은 환자가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안면신경마비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는 여름철인 6~8월에 11만2370명, 겨울철인 12월~2월에 11만244명으로 오히려 겨울철보다 여름철에 더 많았다.
여름철 안면신경마비 발생의 주요 원인은 과도한 냉방이다. 장시간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에 노출되면 체온유지 기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안면근육에 긴장이 지속돼 일부분이 마비될 수 있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에서 갑자기 에어컨과 선풍기의 찬바람을 쐬거나, 반대로 시원한 곳에 있다가 외부의 무더위에 노출될 때, 아침저녁 기온차가 커서 체온이 급격하게 변하면 면역기능이 빠르게 떨어져 바이러스 활동에 취약해진다.
발생 초기엔 피로한 느낌이 유난히 지속되면서 귀 뒷부분, 뒷목, 머리 등에 통증이 생긴다. 증상 발생 후 약 1~2일이 지나면 얼굴근육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보통 한쪽 이마의 주름이 잘 잡히지 않으며 입 끝이 내려가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눈물이 많이 나오고 시간이 갈수록 눈이 뻑뻑해지는 증상도 동반된다. 한쪽 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거나, 음식 맛을 잘 못 느끼기도 한다. 더 진행되면 물을 마실 때 한쪽 입술로 물이 새거나 음식물을 씹기 어려워지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뇌졸중 의한 안면신경마비(중추성 안면신경마비)와 일견 비슷해 보이나 차이가 난다. 뇌의 혈액공급이 차단돼 발생하는 뇌졸중은 어눌함·팔다리마비·감각이상·실조증 등 신경학적 이상을 보인다. 쉽게는 한쪽 얼굴 전체가 마비가 돼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없거나 눈 감기가 힘들면 말초성 안면신경마비, 이마에는 주름은 잡히는데 그 아래 얼굴근육이 움직이기 어렵다면 중추성 안면신경마비일 가능성이 크다.
안면신경마비 발병 초기에는 신경 손상이 진행되면서 점차 마비가 심해지는 경과를 보인다. 심영기 연세에스의원 원장은 “신경 손상 정도에 따라 다양한 예후를 보이는데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신경 손상 정도가 심할 경우 다양한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10년 내 재발률이 10% 정도로 비교적 높은데, 초기에 잘 치료하면 완치율·치료 기간·재발률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초기 증상에는 스테로이드 주사치료가 주로 사용되며 일부 병·의원에선 먹는 부신피질호르몬제, 항바이러스제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재발을 완전 봉쇄하기 어렵다. 증상이 급격히 나빠지면 수술적 치료법인 안면신경감압술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일반 환자에겐 권장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세포 대사와 면역력을 증강하는 전기자극치료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기존 경피적전기신경자극기(TENS)보다 피부 깊숙이 전류를 보내 병변을 직접 자극, 효과를 높인 호아타 요법이 주목받고 있다.
심 원장은 “호아타요법은 미세전류를 1500~3000V 고전압으로 세포에 흘려보내 세포를 자극, 대사를 촉진하고 손상된 신경을 회복해 마비를 풀어준다”며“세포 사이의 림프슬러지(림프액 찌꺼기)를 녹여 배출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어 2~5일 간격으로 꾸준히 받으며 재발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료 후에는 과로·수면부족·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체력 소모 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규칙적인 수면과 균형잡힌 식사는 필수다. 체온이 너무 올라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냉방기기를 장시간 사용하거나, 찬 음료를 자주 마시는 것도 삼가야 한다.
심 원장은 “더위를 많이 타면 린넨이나 순면 소재 의류를 입고, 부채나 선풍기 약풍으로 바람을 쐬는 게 도움이 된다”며“틈틈이 귀 뒤쪽을 부드럽게 문질러 혈액순환을 돕거나, 입속에 바람을 넣고 양 볼을 움직이는 안면근육 스트레칭을 해주면 안면신경마비 예방에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