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희나·김무연 기자] “지금 심정 같아선 광화문에 서서 촛불이라도 들고 싶어요.”
가상화폐에 투자했던 이모(27·여)씨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샀던 가상화폐 ‘리플’이 하루만에 1리플당 3200원에서 2000원까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여윳돈 100만원을 투자했던 이 씨가 리플을 팔아 손에 쥔 건 72만원뿐이다.
◇정부 거래소 폐쇄 방침에…가상화폐 ‘요동’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가상화폐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11일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기준 오후 4시30분 비트코인은 전거래일보다 274만3000원(-12.55%) 내린 1910만3000원에 거래됐다.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서 장중 한때 1700만원 까지 밀리기도 했다. 전날 2200만원 수준을 웃돌던 비트코인 가격이 순식간에 500만원 가량 날아간 셈이다. 이더리움 또한 전날보다 30만8800원(-15.11%) 내린 173만4000원에, 리플은 전날보다 418원(-14.92%) 내린 2383원을 기록했다. 장중 20% 수준까지 밀리기도 했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투기나 도박에 비유하면서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정부 법안을 마련한다는 소식에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 앞서 정부는 가상화폐 관련 관계기관 합동 TF를 만들고 투자자들의 투기양상이 과열됐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투기 열기가 가라앉지 않자 은행, 가상화폐 거래소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결국 거래소 폐쇄라는 카드까지 들어나온 셈이다.
이후 청와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는 법무부 입장은 정부 차원에서 조율된 입장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가상화폐 가격이 반등했다. 다른 부처에선 다양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오후 5시6분 빗썸 기준 비트코인은 하락폭을 축소하면서 2000만원까지 올라섰다.
◇일관성 없는 규제 방침에 가상화폐 급등락, 투자자 피해 ‘직격탄’
상황이 이렇자 가상화폐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손실도 커지고 있다. 적게는 몇 만원, 많게는 몇 억을 가상화폐에 투자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규제 발표로 가격이 급락해 금전적 손실을 봤다는 얘기가 잇따랐다. 고점에 사서 바닥에서 손절한 투자자들의 손실은 30~4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직장인 정모(30)씨는 “절대 손해는 안 본다는 지인들의 추천에 따라 얼마 전 받은 적금 2000만원 정도를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원금까지 손해를 봤다”며 “정부가 신규 가입을 막는 등 규제를 시작한 건 알고 있었지만 거래소 폐쇄라는 강수를 둘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신림동에 사는 김모(32)씨 역시 여윳돈 500만원을 투자했지만 이번 정부 발표로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는 “이미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 돈을 빼기보다는 다시 상승장이 열릴 때까지 버틸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손해를 보면서라도 가상화폐를 팔려고 해도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가상화폐의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매도를 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거래소 웹사이트와 앱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빗썸의 경우 정부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연 현상을 보이며 투자자들의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빗썸을 주 거래소로 이용하는 박모(28)씨는 “정부 발표를 뉴스에서 보고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를 처분하려고 했는데 거래소가 계속 먹통이었다”며 “그 사이 가상화폐 가격이 더 떨어졌다.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국민청원까지 나섰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가상화폐규제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적 있습니까?’라는 청원글에는 5만3000여명이 동참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원칙과 방향성이 일관되지 않아 투자자 피해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를 폐쇄하려면 법적인 근거를 갖고 해야 한다”면서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청원 게시판이 가상화폐로 도배되고 있다”면서 “거래소를 폐쇄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재산 몇백조원을 날린다는 의미인데 결국 본인들의 손으로 막대한 소비자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업계관계자는 “금융 산업이 잘못되면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도 앞으로 시장 상황을 예측할수 없기 때문에 시장이 커지자 뒤늦게 대응에 나서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