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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구은행은 새 행장을 두고 계속되는 자격 논란과 ‘자행 출신이 돼야 한다’는 순혈주의, ‘경북고 vs 대구상고(현 상원고)’ 또는 ‘경북대 vs 영남대’ 등 내부 파벌 싸움에 부딪치면서 깊은 내홍에 빠졌다. 그렇게 10개월 동안 ‘은행장 없는 은행’이 됐다. 당연히 구심점 부재로 실적도 악화돼 갔다.
경영 공백이 길어지자 DGB금융지주 이사회는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 위원회(자추위)를 열고 김태오(66) 회장이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은행장을 대행 겸직하는 안을 냈다. 자추위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기업문화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김 회장이 가장 적임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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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주일 뒤 임추위는 “자추위의 결의에 따른 한시적 겸직체제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하기로 했다”며 찬성으로 돌연 입장을 바꿨다. 경영 정상화라는 급한 불부터 꺼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다. 그렇게 김 회장은 지난해 1월말 주주총회를 통해 제12대 대구은행장 자리에 오르며 겸직 체제에 들어갔고 대구은행은 가까스로 파국을 면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가 한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내부에서는 김 회장의 행장 겸직 체제에 대해 ‘불만’과 ‘불신’의 눈길을 보냈다. 일각에서는 자진사퇴 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김 회장은 직접 나서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부득이 겸직체제 분리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면서도 “겸직 기간 동안 최고의 은행장을 육성한 후 미련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하며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실제 김 회장은 은행장 겸직을 시작하면서 곧장 후계자 양성 과정 구축에 들어갔다. 선발·육성한 핵심인재를 은행장과 그룹 임원, 차세대 리더로 선임하는 자체 인재육성체계 ‘DGB CEO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또 지주 사외이사 규모를 7명까지 늘리고 주주 추천, 외부 인선자문위 검증 등을 통해 선임하도록 했다. 지주 이사회 내 현직 회장과 은행장을 배제한 사외이사만 참여하는 회의체 등을 신설해 회장을 포함한 모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경영감시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 개선 작업을 맡겼다.
김 회장은 “학연·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는 투명한 인사, 내부인재 양성 및 다양한 기회제공, 파벌문화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 근절 등 DGB 만의 건전한 기업문화를 조성하겠다”며 “권한을 위임해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만들어 과거로 회귀하거나 권력을 독점하는 폐단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의지는 점차 현실이 됐다. 대구은행은 약 1년 반에 걸쳐 차기 은행장 선임을 위한 다양한 CEO육성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진행해갔다. 이를 통해 지주·은행 현직 임원 19명 중 숏리스트(Short List·최종 후보자군)를 선정하고, 멘토링과 경영 세션 등 심화 검증 과정을 거쳐 임성훈 부행장을 차기 대구은행장 최종 후보자로 선출했다. 임 부행장은 이달 말 주주총회를 통해 제13대 대구은행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지난 2018년 3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다. 김 회장은 결국 약속을 지키고 ‘아름다운 용퇴’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대구은행이 내부 순혈주의와 학연·지연 등 파벌문화를 완전히 혁파한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이 초석을 닦은 것이고, 임 후보자가 차기 행장에 올라 슬기롭게 해결해나가야 하는 숙제다. 대구은행 내 영남대 주류 라인이면서도 비(非)주류 대구중앙고 출신인 임 후보자가 중도(中道)를 걷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