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금융투자업계의 최대 화두였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이 공개됐다. 금융위원회는 자기자본 3조·4조·8조원 등 단계별 접근법으로 초대형IB 키우기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자기자본 수준별로 영위할 수 있는 사업과 인센티브를 차등화하기로 한 것. 업계에서는 이번 IB 육성안으로 중대형 증권사들 사이에서 몸집 키우기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2일 금융위가 발표한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우선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투사는 자기자본의 200% 한도에서 어음 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를 기업 대출(신용공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증권사의 어음 발행액은 레버리지 비율 산정에서도 제외된다. 또 기업을 상대로 한 외국환업무가 허용된다. 8조원이 넘으면 종합투자계좌(IMA) 영업을 통해 일반 고객에게서 자금을 끌어모아 기업 대출에 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자기자본 수준별로 영위할 수 있는 사업과 인센티브가 차등화됨에 따라 증자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증권사들의 덩치 키우기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3조원 이상 구간에 해당하는 증권사들의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조원 이상∼8조원 구간에 해당하는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대우(6조7000억원)와 NH투자증권(4조5000억원) 등 두 곳이다. 미래에셋은 추가적인 M&A나 증자로 얼마든지 8조원 이상 구간에 진입할 수도 있다. 3조원 이상 구간에는 KB투자증권+현대증권(3조8000억원)과 삼성증권(3조4000억원), 한국투자증권(3조2000억원) 등 세 곳이다. 이들도 4조원 이상으로 덩치를 키우는 게 어렵지 않는 수준이다. 자기자본 규모가 2조5000억원인 신한금융투자는 지난달 21일 이사회를 열어 5000억원대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번 증자를 마치면 자기자본 3조원대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중대형 증권사들의 덩치 키우기 경쟁으로 현재 매물로 나온 하이투자증권이 수혜를 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3조원 초중반대의 자기자본을 갖춘 증권사들이 자기자본 7000억원대의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하면 바로 4조원대 증권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만큼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빠르게 자기자본을 키우고 있는 메리츠종금증권도 인수 후보군으로 꼽힌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유상증자와 아이엠투자증권 인수 등을 통해 자기자본을 1조7000억원 정도로 끌어올려 놓은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 하이투자증권은 자기자본 관점에서만 접근해도 달리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덩치를 추가로 키울 방안에 대해선 앞으로 구체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며 “수익성 측면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얼마나 개선될지를 다각도로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증권사들이 단순히 몸집을 불리는 것에만 치중에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순영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이 수익 창출을 위해 자본금 확대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경쟁력있는 사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현재 증권사에 대형화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모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