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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네이버나 카카오를 플랫폼에서 이길 수 있다고 그러니 사람들이 ‘뭔 이야기야’ 그랬죠. 그런데, 적어도 기업간거래(B2B) 분야에선 자신 있습니다. 남들이 안 가진 것들이 있거든요.”
8일 오전 열린 KT 이사회에서 연임 의사를 밝힌 구현모 KT 대표이사(CEO). 그는 이날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KT는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도와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면서, B2B 플랫폼 분야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2020년 3월 KT 대표이사에 공식 취임한 구 대표의 잔여 임기는 내년 정기주주총회일(3월)까지다. 그런데 이날 연임 의사를 공식화한 만큼, 이사회는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를 통해 적격 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KT 정관에 따르면 현 CEO가 연임의사를 밝히면 이사회는 외부 공모 없이 그에 대한 적격여부부터 판단하게 돼 있다.
구 대표가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마친다면 KT출신 CEO로서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삼성전자 출신인 황창규 전 회장이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마쳤지만 KT출신으로선 처음이다. 앞서 KT 이사회는 2019년 12월 만장일치로 33년째 KT에 몸담았던 구현모 당시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을 CEO로 선임했다.
“저성장 시대, 디지털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것”
그는 왜 다시 한번 KT 대표이사를 하려는 걸까. 어떤 미래 비전을 생각하는 걸까. 구 대표는 네이버나 카카오보다 B2B 플랫폼을 잘할 수 있는 이유로 그간의 역사를 꼽았다. 그는 “디지털 전환을 전략적 목표로 제시한 것은 우리(KT)가 처음”이라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시작했고, 제일 먼저 방향성을 보여줬고, 그걸로 성과를 냈다. 왜 KT인가 그런다면 지난 3년간의 성과를 봐 달라”고 힘줘 말했다.
실제로 구 대표 취임 이후 KT는 디지털플랫폼기업(디지코·DIGICO) 전략을 펴면서 깜짝 놀랄 실적을 보여줬다. 2020년 매출 23조 9167억원, 영업이익 1조 1841억원이던 것이 2022년 3분기 합산으로 매출 19조 671억원, 영업이익 1조 5387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실적이 좋은 것보다는 이제 KT가 (통신인프라가 아닌) 디지털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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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플랫폼에서 21% 성장
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1%대로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KT가 앞장서 대한민국의 디지털 전환을 돕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이날 발표된 3분기 KT 실적을 보면, B2B 플랫폼 사업(DIGICO B2B)은 올해 3분기 누적 수주액이 전년 대비 21% 성장했고, AI콜센터(AICC)는 같은 기간 91.7% 성장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여기엔 신한, CJ, 현대차그룹 등과의 혈맹(사업협력)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KT는 모빌리티(현대차), 금융(신한금융지주), 미디어·콘텐츠(CJ), 로봇(현대중공업그룹) 분야에서 잇따라 지분을 섞거나 투자해 탄탄한 관계를 구축 중이다.
구현모 대표는 “지금은 클라우드 조금, 데이터 센터 조금 이런 식으로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면서 “우리는 각 산업 분야의 디지털전환을 도와 우리나라 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나가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이리되면 가만있어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KT가 대기업하고만 제휴하는 건 아니다. 코로나 19가 끝났지만,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법률 지원 서비스에도 열심이다. KT는 국내 1위 법률지원 서비스 로톡과 제휴해 자사의 소상공인 상품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월 1회 최대 3만 원 상당의 로톡 15분 전화법률상담 비용’을 지원한다. 구 대표는 “다른 통신사들도 AI컴퍼니나 플랫폼 회사를 말하지만 우리(KT)는 3년 전에 이미 디지코를 이야기 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서 뒤처지면 국가 경쟁력도 하락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선 반대 목소리도…이사회 전문성 강화, 인사 탕평책은 숙제
왜 구현모만이 할 수 있다고 봤을까. 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지난 3년간 KT가 변화한 부분, KT가 만들어낸 고객들의 평판을 봐 달라. 좀 더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가 연임 의사를 밝힌 뒤 KT새노조는 “이사회에서 연임 불가 결정을 하기를 기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새노조는 KT 대표 노동조합은 아니다. 새노조는 성명에서 구 대표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로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 △지난해 부산 국사발 전국 인터넷 중단 사건 등 통신 맏형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KT 내부에선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황창규 회장 시절 발생한 일이고 현재 헌법 소원이 제기돼 법적 다툼이 있다는 점 △부산발 사고 이후 구 대표가 지난해 인사에서 ‘네트워크운용혁신담당’을 신설해 테스트베드 및 모니터링 강화에 나선 점 등을 들어 이 것만으로 그의 연임을 반대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상당하다.
다만, KT 안팎에서는 주인 없는 KT의 지배구조 안정화를 위해서는 이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KAIST 출신 우대 등 내부에서 논란이 됐던 인사 정책을 개선해 지난 3년간 소외받았던 임직원들을 중용하는 ‘탕평책’을 써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