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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0시 50분쯤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국민안전처가 오전 11시부터 폭염경보를 발효한다는 긴급재난문자였다. 스마트폰에는 ‘12~17시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기 바란다’는 글이 떴다.
서울 낮 기온이 35.7도까지 오르며 첫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시민들은 가마솥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대형서점과 쇼핑몰은 불볕더위를 피하려는 시민들로 가득했고 어르신들은 쉼터로 몰려들었다. 쪽방촌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저 무더위에 무기력할 뿐이었다.
◇평일 대형서점·쇼핑몰에 시민들 발길 이어져
서울 영등포역 인근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는 평일 낮 시간인 데도 더위를 피해 쇼핑과 문화생활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장 2층 교보문고에 들어가니 서적 진열대 사이사이는 책을 읽는 사람들고 발디딜 틈이 없었다. 취업준비생 한모(25·여)씨는 “취업 준비 관련 서적도 살 겸 머리를 식히러 왔다”며 “집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있기엔 눈치가 보이고 카페는 너무 시끄러운데 서점은 조용하고 시원해서 피서 장소로 딱 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타임스퀘어점 관계자는 “시원한데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도 읽을 수 있어 서점에 오래 머무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다른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책을 훼손하지 않는 이상 딱히 제재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백화점 내 20곳 가까운 카페들에도 빈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무 중 잠깐 차를 즐기러 온 직장인, 20대 연인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음료 한 잔으로 무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주부 박모(33·여)씨는 “13개월 된 아들과 쇼핑 겸 나들이를 왔다”며 “아기를 안고 밖을 다니기는 덥고 머리 식히기엔 백화점만큼 좋은 장소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위를 피해 백화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백화점 매출도 높아지는 추세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2013년 13.8%였던 휴가철 매출 비중이 지난해 16.1%까지 올랐는데 올해는 특히 더 더워 매출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20·30대를 중심으로 도심에서 피서를 즐기는 ‘씨티 바캉스’족(族)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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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인근 대형 쇼핑몰을 나와 역전파출소 주위로 걸어가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좁은 골목길과 슬레이트 지붕을 켜켜이 얹은 ‘영등포 쪽방촌’엔 무더운 공기 속에 시큼한 냄새가 감돌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통로 양 옆엔 허리를 한껏 숙여야 들어갈 법한 작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총 67동의 쪽방 건물에 6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이곳 주민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자들. 무더가 절정에 이른 오후 2시 쪽방 앞 간이 의자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던 80대 할머니, 땀을 뻘뻘 흘리며 평상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 등 방 안에 있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집집마다 쪽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민소매 차림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던 정모(65)씨는 “방안이 너무 더워 바깥에서 햇볕을 쐬는게 더 시원할 정도”라며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 ‘쉼터’에 가야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쪽방촌 주민 최모(72·여)씨는 “쉼터에 사람이 많을 땐 지하철을 타러 간다”며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무료이기 때문”이라며 “1호선을 타고 쭉 한바퀴 돌면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방 안은 숨조차 쉬기 어려워 마음 놓고 더위를 피할 곳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쪽방 상담소 관계자는 “각종 민간단체들이 가정용 냉방용품을 지원하고 있지만 부족한 실정”이라며 “특히 홀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폭염에 취약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