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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의 4%로 쪼그라 들어"‥도이체방크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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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19.07.08 17:16:20

대규모 구조조정안 발표…코메르츠 합병 무산 자구책
“IB에서 손 뗄 것…원점으로 돌아가 신뢰 회복”
150년 역사 도이체방크 쇠퇴…美법무부 과징금 결정적
쪼그라든 시가총액…美JP모건 4% 불과

크리스티안 제빙(왼쪽)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와 폴 아클레트너 도이체방크 감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연례총회에서 참석해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149년 역사의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가 대대적인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손실만 안겨주는 투자은행(IB) 및 글로벌 주식 매매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관련 인력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사실상의 ‘몰락’을 인정한 셈이다.

한 때 JP모건과 1위 다툼을 벌이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도했던 도이체방크는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음에도 실적 악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 내부 분열 등 다양한 이유가 쇠퇴 원인으로 꼽히지만 미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미국 법무부 과징금 부과 이후 도이체방크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IB에서 손 뗄 것…원점으로 돌아가 신뢰 회복”

도이체방크 감독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사업 축소, 인력 감축 등의 내용이 담긴 자구 구조조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은행은 2022년까지 IB 부문과 글로벌 주식 매매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해당 부문 인력도 줄이기로 했다. 현재 9만1500명 인력을 7만4000명으로, 약 1만8000명 감원하겠다는 계획이다. 5명 중 1명 꼴이다. 이를 통해 향후 3년 동안 총 60억유로(약 7조9500억원)의 비용을 절감, 연간 지출을 170억유로로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구조조정안에는 비핵심 자산은 매각하고, 채권·통화 거래는 최소 수준으로만 유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기업 거래 및 자산관리·금융자문에 집중하되, 기업 거래에서 위험가중자산 비중을 40%까지 줄이기로 했다. 대규모 임원 교체도 예고했다.

도이체방크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오는 24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28억유로 순손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초기 구조조정 비용 30억유로가 반영된 결과다. 2022년까지 총 74억유로의 구조조정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은행은 추산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주주 배당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2022년에 배당 및 자사주 매입으로 50억유로를 되돌려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크리스티안 제빙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오늘 발표한 것은 펀더멘털을 재건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핵심 역량 및 핵심 DNA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원점으로 회귀한다. 고객 거래를 중심으로 한 독일 은행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도이체방크의 명성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IB 사업에서 사실상 물러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도이체방크가 끝내 구조조정 칼을 꺼내 들게 된 것은 지난 4월 독일 2위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이 무산된 탓이 크다. 재도약을 위한 마지막 기회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드라마틱한 계획은 지난 4월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이 무산된 뒤에, 149년 역사의 독일 대출 기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게 된 이후에 나온 조치”라고 설명했다.

美법무부 과징금…위기 결정적 단초

하지만 합병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데에는 다양한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익성 악화 등으로 꾸준히 위기설이 나오긴 했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가 결정적 단초가 됐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2016년 도이체방크에 과징금 140억달러를 부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5~2007년에 보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주택저당증권(MBS)을 안전한 것처럼 속여서 대량 판매했다는 혐의였다. MBS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주요 원인이다.

도이체방크는 이듬해 미국 법무부와 절반인 72억달러(약 8조5000억원)만 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충당금으로 쌓은 돈이 20억~30억유로(약 2조6500억~3조9800억원)에 불과, 자기자본 잠식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였다. 회사 주가는 속절없이 폭락했고 3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스캔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경영 악화 원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리보금리 조작 사건(2015년)을 비롯해 가장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은행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고객이 떠나면서 경영실적은 2017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미국 은행들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애플과 구글에 대한 유럽연합(EU) 제재에 복수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외에도 영국 모건 그렌펠(1989년)과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1999년)를 인수한 뒤 무리하게 영미식 IB 사업을 시작한 것도 몰락의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인센티브를 지향하는 영미권 직원들과 독일 전통 은행 운영 방식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내부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메인에 위치한 도이체방크 본사 전경. (사진= AFP)
쪼그라든 시가총액…美JP모건 4% 불과

M&A 이후 체질 개선 실패, 반복되는 무리한 투자, 각국 규제당국 제동, 스캔들 관련 소송 등이 겹치면서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은 현재 148억4200만달러에 그치고 있다. JP모건(3681억5800만달러)의 4% 수준으로,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유럽 대표 우량 상장사들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지수에서 탈락했다.

올해 1분기(1~3월) 순이익도 2억유로에 그쳤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2650억원이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이 거둔 5728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99년 미국의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한 후 지난 20년 동안 열성을 다해 사업을 확장했던 도이체방크가 급진적인 개혁을 하게 됐다”며 “마지막 주사위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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