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외국인 채권투자자금 사상 최대 순유출…왜?

최정희 기자I 2017.01.16 15:05:46

작년 12.3조 유출..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템플턴만 17조 유출 추정..펀드 환매에 따른 대응
외국인, 통안채 팔고 장기 국고채 매입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작년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이 사상 최대 순유출을 기록했다. 무려 12조3000억원 가량이 빠져나갔다.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을 기록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다만 그 당시엔 1조원 가량 자금이 유출됐으나 작년엔 그보다 10배가 훌쩍 넘는 자금이 유출되면서 의아함을 자아내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로 쉽게 설명된다. 다만 대다수 시장전문가들은 원화채권 매수 1위를 기록해왔던 프랭클린템플턴의 템플턴글로벌본드펀드가 환매에 시달리면서 원화 채권을 팔아치운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 템플턴이 좌우하는 韓 채권시장..17조원 순유출 추정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작년 채권시장에서 12조3420억원의 자금을 뺐다. 그로 인해 외국인 채권보유 자금은 2015년말 101조4000억원에서 89조3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채권시장 일부에선 템플턴글로벌본드펀드가 작년 한 해동안 약 17조원의 원화 채권을 내다팔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2015년말 템플턴펀드의 원화 채권 보유 규모는 대략 22조원으로 전체의 20%를 넘게 차지했는데 최근엔 5조원 이하로 줄었을 것이란 추정이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템플턴 펀드는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10조원 가량을 보유했는데 그 이후에도 상당량을 매도하면서 최근엔 5조원 이하로 보유 규모가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템플턴펀드가 원화 채권을 매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펀드 수익률이 나빠지면서 2015년 하반기부터 환매 요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템플턴펀드의 규모는 2015년말까지만 해도 5800억달러(약 685조원) 수준이었으나 최근엔 4200억달러(약 496조원)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템플턴 펀드는 엄밀히 말하면 채권이 아니라 달러 약세에 베팅하는 펀드인데 (달러가 강세로 바뀌면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환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한국 채권을 많이 사들였기 때문에 이에 대응해 채권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외국인 투자자들은 통안채에서 1조4000억원을 순유출하고 국채에선 8000억원을 순매수했는데 이런 흐름 역시 템플턴의 움직임을 방증한다. 김 센터장은 “템플턴펀드를 운용하는 마이클 하젠스탑 프랭클린템플턴 글로벌 매크로 최고운용책임자(CIO)는 FX전문가로 원화 채권 강세보단 원화 강세에 투자했고 그러다보니 유동성이 좋은 통안채를 주로 매입했는데 이를 매도하다보니 통안채에서 자금흐름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선 조선 등 중공업체의 수주 감소가 통안채 수요를 줄였다고 분석한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공업체들은 2~3년 단위로 선물환계약을 맺는데 지난해 수주가 안 되는 바람에 롤오버(만기 연장)가 잘 안 된 부분이 통안채 투자 수요를 줄였다”고 말했다. 중공업체와 선물환계약을 맺은 은행들은 달러를 빌리든지 스왑해 스팟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대신 원화를 사고, 이 원화를 통상 통안채로 운용해왔는데 그 수요가 줄어들었단 평가다. 한국은행이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통안채 발행 물량을 줄인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 ‘금리 역전현상’ 아랑곳 않는 외국인, 속내는

이런 상황에서 장기 국고채에 대해선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다는 점은 의외다. 작년 잔존만기 1~5년인 채권엔 1조9440억원이, 5년 이상 채권엔 7487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더구나 국고채 5년물, 10년물은 미국 금리와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13일 기준 국고채 5년물과 10년물 금리는 각각 1.810%, 2.096%로 미국 국채(1.899%, 2.398%)보다 낮다. 그럼에도 꾸준한 국고채 매입에 외국인 자금은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순유출됐으나 이달 들어선 순유입으로 돌아섰다.

미국을 제외한 더블A 등급 이상의 국채 중에선 한국 채권이 가장 금리가 높은데다 유럽 등과 비교해서도 여전히 금리 우위를 보인 영향이란 해석이다. 다만 금리에 대한 투자보다 아비트리지(arbitrage, 차익거래)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센터장은 “국고채 장기물은 주로 헤지펀드, 이머징 펀드 등이 투자하는데 작년엔 큰 움직임이 없었다”며 “이들은 채권을 만기까지 가져가겠단 전략이 아니라 단기트레이딩을 통해 아비트리지를 먹겠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화 통화스왑 금리(CRS금리 1년물 0.98%)는 여전히 낮고 IRS금리(1.218%)는 이보다 높고 국내 채권금리는 IRS보다 높다”며 “통화스왑에서 숏포지션을 잡고 채권시장에서 롱포지션을 잡으면 스프레드만 60~70bp 이익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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