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가 '봉'?…작년 세금 3조 5000억 더 냈다

박종오 기자I 2016.01.07 17:34:01

금연 관련 예산은 줄어..비가격정책 펴야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직장인 윤모(39)씨는 하루에 담배를 한 갑가량 피우는 흡연자다. 그는 지난해 1월 정부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 올리자 한때 금연을 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윤씨는 “담배를 계속 사다 보니 가격 거부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가 담뱃값을 올려 더 거둔 세금이 3조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건강을 챙긴다며 세금을 대폭 인상했지만, 판매가 덜 준 결과다. 이 때문에 윤씨 같은 흡연자 주머니만 털린 꼴이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정부가 거둬들인 담뱃세는 총 10조 534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6조 9732억원에서 51.1%(3조 5608억원)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지난해 담배 제조업체의 공장 반출 물량과 수입업체의 세관 통관 물량 등 전체 반출량에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을 곱해 구한 추정치다. 담뱃세는 정부가 담배 반출 시점에 제조·수입업체로부터 미리 걷는다.

담배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늘었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담배에 붙는 소비세 등 각종 세금과 부담금을 기존 1550원에서 3323원으로 두 배 이상 인상했다. 이로 인해 담배 판매량이 전년 대비 34%가량 줄고, 연간 세수는 2조 8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세수는 이보다 7600억원 정도 더 걷혔다. 세금은 곱절이 됐지만, 소비가 예상만큼 줄지 않은 영향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담배 반출량은 31억 7000만 갑으로 2014년(45억 갑)보다 29.6% 줄었다. 담배 제조·수입업체가 반출한 담배를 도·소매점에 넘긴 판매량의 경우 23.7%(43억 6000만 갑→33억 3000만 갑)가 감소하는 데 그쳤다. 기재부 관계자는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도입하기로 한 시기가 올해 말로 늦춰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가 흡연율을 낮춘다는 담뱃세 인상의 본래 목적을 일정 부분 달성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흡연자에게 조세 부담을 왕창 떠넘기기 위한 것 아녔느냐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2014년 6월 기재부 산하 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담배 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담뱃값 4500원은 정부가 세수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다. 담뱃값 인상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신원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정부가 담뱃세를 높이면서 정작 금연 관련 예산은 줄였다”며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품목을 대상으로 대놓고 증세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금연 지원 서비스 예산은 1365억 700만원으로, 작년보다 109억 9300만원(7.5%) 감소했다.

담배 세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세무학회장)는 “과거 추이를 보면 국내 경제가 어려웠던 1997~8년, 2009년에 연간 담배 소비량이 평균(45억 갑)보다 5억 갑 정도 늘었다”며 “흡연율이 다시 반등할 수 있는 만큼 세금을 올리는 가격 정책보다 비가격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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