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주인공 미지가 매일 방을 나설 때 주문처럼 되뇌던 말이다. 고교 시절 유망한 육상 선수였던 미지는 부상으로 꿈이 좌절되자,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채 3년을 은둔한다. “내가 너무 쓰레기 같다”고 울부짖던 그를 밖으로 이끈 건 문 앞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할머니와 저마다의 무게를 버텨내야 했던 가족이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미지에게 할머니는 묻는다.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냐?” 살자고 하는 모든 일은 용기 있는 일이라며, 미지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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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일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 상태로 분류된 청년(15~29세)은 50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30대까지 포함하면 80만 명에 달한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신의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생각의힘)에서 그 원인을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찾는다. 그는 “일자리는 곧 인간의 생존이고 자존감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굳건하게 자리 잡게 하는 매개체”라며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눈을 낮추면 되지 않느냐”, “노력은 해봤냐”고 말한다. 청년들은 억울하다. 최근 대기업들은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현대차는 2019년, LG는 2020년, SK는 2022년에 공채를 없앴고 삼성만 유지 중이다. 이같은 불확실한 채용 구조에서 ‘쉬었다’는 기록은 낙인이 되기 쉽다. 단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왜 공백이 생겼는지” 증명해야 하는 부담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게다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하청으로 삶의 궤적이 갈리는 구조에서 “아무 일이나 할 수 없다”는 청년들의 말은 변명이 아니라 생존 전략인 셈이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화두는 경기 활성화와 부동산 대책이 먼저다. 청년들은 정치 앞에서 표 계산을 위한 갈라치기 대상이 되고, 기업에는 ‘MZ세대’라는 소비의 타깃이 된다. 노동 정책에서도 정작 청년은 설계나 평가 과정에서 배제된다. 이 모든 책임을 청년에게만 돌릴 수 없다. 청년을 삶의 주체로 인정하고, 실패를 감당할 복지와 다양한 생애 경로를 지원해야 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제도적 신호가 필요하다. 쉬고 있는 청년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쓸모의 믿음인 것이다.
드라마는 끝났고, 위로는 닿았지만 현실은 아직 멀다. 누군가의 애쓰는 삶이 또 다른 사람을 구한다는 믿음. 그러니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부디 나에게 너그러워지라고 수많은 미지들에게 말을 건넨다. 드라마가 던지는 이 질문들에 이제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