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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정찬 복귀'로 5년만에 재현되는 줄기세포 규제 적절성 논란

천승현 기자I 2015.11.17 14:51:52

네이처셀, 日 협력병원서 줄기세포치료제 시술 승인
식약처 "일본서 제한적 시술 허용..국내 허가 신청 취하"
5년전 알앤엘바이오 무허가 의약품 논란 재현 조짐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옛 알앤엘바이오의 줄기세포치료제 불법 시술 논란으로 불거졌던 국내 줄기세포 규제 적절성 논란이 5년만에 반복될 조짐이다. 라정찬 전 알앤엘바이오 회장이 공식적으로 복귀한 네이처셀은 일본 시장 승인을 근거로 국내 규제가 과도하다고 문제삼고 있다. 보건당국은 일부 규제 완화를 시도하면서도 “현재 승인 절차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네이처셀(007390)은 최근 일본 관계사 알재팬의 협력병원 니시하라 클리닉이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중증 하지허혈성질환, 퇴행성관절염, 피부재생(미용) 등 3개 용도로 줄기세포치료제 사용을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병원이 사용하는 줄기세포 치료기술은 바이오스타 줄기세포연구원이라는 민간 연구원이 ‘바스코스템’이라는 상품명으로 개발 중인 줄기세포치료제다. 이 연구는 라정찬 전 알앤엘바이오 회장이 주도했다.

◇네이처셀 “연구개발 성과 결실”..식약처 “특정 병원 제한적 사용”

일본 병원에서의 시술 승인에 대해 네이처셀은 “연구 및 기술 개발 노력이 선진국인 일본에서 결실을 맺었다”면서 “일본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의 환자가 니시하라 클리닉을 통해 줄기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식약처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바스코스템을 의약품으로 허가한 것이 아니라 니시하라클리닉에서만 의사 책임 하에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가치를 깎아내렸다.

식약처와 네이처셀의 시각 차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줄기세포치료제 승인 절차의 차이에 기반한다. 한국에서는 줄기세포치료제는 의약품으로 분류돼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만 허가받을 수 있다. 파미셀(005690)의 ‘하티셀그램’, 메디포스트(078160)의 ‘카티스템’, 안트로젠의 ‘큐피스템’, 코아스템(166480)의 ‘뉴로나타-알주’ 등 4개의 줄기세포치료제가 국내 허가를 받고 시판 중이다. 미국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기준을 적용한다.

일본에서의 줄기세포치료제 승인 절차는 우리나라보다 다소 느슨한 편이다. 일본에서는 줄기세포치료제를 ‘의약품’과 ‘시술 영역’으로 구분하는 ‘투 트랙’으로 운영한다.

일본 약사법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줄기세포치료제를 의약품으로 분류해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유효성을 입증받으면 전국적인 사용을 승인한다. 그러나 병·의원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치료제라도 의사 책임하에 시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의사의 시술 영역으로 포함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1월 제정돼 이달 25일부터 시행되는 ‘재생의료 안전성 확보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체줄기세포 등 위험도가 높지 않은 줄기세포치료제는 의료기관에서 시술 계획을 특정인증 재생의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후생노동성의 승인을 받으면 시술을 허용토록 했다. 이번에 네이처셀 협력병원의 시술 승인은 이 법률에 따른 적법한 절차다. .

재생의료 안전성 확보에 관한 법률은 마치 일본에서 줄기세포치료제의 승인 절차를 완화한 것처럼 비춰지지만 오히려 규제 강화의 성격이 짙다.

기존에는 의료진이 자유롭게 시술할 수 있었던 것을 일본 정부가 승인한 줄기세포치료제만 시술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 것이다. 일본에서는 줄기세포치료제 시술이 자유 진료 영역이라는 이유로 실태 파악이 어렵고 해외에서 규제가 없는 일본으로 줄기세포를 들여와 다수 투여해 사망 사례 등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신설됐다.

니시하라클리닉이 사용하는 줄기세포치료제 ‘바스코스템’은 국내에서는 허가받지 못한 제품이다. 네이처셀의 관계사 지난 3월 식약처에 바스코스템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기존 의약품보다 안전성·유효성이 개선됐음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가를 보류했고, 알바이오는 지난달에 희귀의약품 지정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네이처셀은 국내보다 규제가 덜 엄격한 일본에서 협력병원을 통해 제한적으로 줄기세포치료제의 사용 승인을 받은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 “국내에서 허가받지 못한 줄기세포치료제가 일본에서 승인받았다”며 국내에서의 과도한 규제를 문제삼는 배경이다.

식약처는 “국내에서도 시판 허가를 받지 못했더라도 의사 판단 하에 사용할 수 있는 ‘응급상황 사용승인’ 제도를 통해 시급한 약물의 사용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고 국내 규제가 과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번 논란과는 별도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안전성이 확보된 첨단재생의료제품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재생의료법 제정을 통해 관리체계를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국내 줄기세포치료제 승인 현황(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라정찬 회장 복귀로 5년만에 재현된 줄기세포치료제 논쟁

국내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줄기세포치료제가 일본에서 사용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업계에서는 혼선이 제기된다. 일본 일선 병·의원에 줄기세포치료제를 공급하는 국내 업체는 네이처셀이 유일하다.

사실 네이처셀은 이미 기존에도 일본 의료기관에서 광범위하게 줄기세포치료제를 공급해왔다. 전신 격인 알앤엘바이오 시절부터 중국·일본 등에 5만여건의 줄기세포치료제를 시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처셀의 최대주주는 라정찬 전 알앤엘바이오 회장이 설립한 바이오스타코리아(12.91%)와 알앤엘바이오에서 이름을 바꾼 알바이오(11.67%)다.

식약처는 네이처셀의 줄기세포치료제가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치 국내에서 과도한 규제로 바이오업체의 연구를 위축시킨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마치 지난 2010년 불거졌던 알앤엘바이오의 줄기세포치료제 해외 시술 논란과 흡사하다. 2010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알앤엘바이오가 국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치료제를 일본과 중국에서 환자들에게 투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알앤엘바이오는 “환자들의 요구에 줄기세포치료제를 배양해주고 환자들이 직접 운반해 해외에서 시술 능력이 있는 의사들이 시술을 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것은 의약품 제조행위로 볼 수 있는데, 알앤엘바이오는 줄기세포치료제를 허가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허가 의약품 제조에 해당한다”며 철퇴를 내렸다.

식약처는 지난해 말 알앤엘바이오의 사업을 승계받은 케이스템셀에 전 품목 제조업무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렸고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라정찬 전 알앤엘바이오 회장
이번 논란은 라정찬 전 회장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라 전 회장은 지난 9월 네이처셀의 신규 이사에 이름을 올리며 공식적으로 현업 복귀를 선언했다.

네이처셀은 일본 병원에서의 시술 승인을 계기로 국내 줄기세포치료제 승인 절차의 완화를 요구할 태세다. 네이처셀 측은 “바스코스템의 희귀의약품 지정신청을 취하한 것은 식약처 기술 검토부서의 무분별하고 무리한 기술보완 요청 및 전문가 부재로 줄기세포 특성의 이해부족에 의한 일방적 행정절차 진행을 우려해서 결정한 것이다”고 식약처의 허가절차를 정면 비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기준에 따라 4개의 줄기세포치료제가 허가받았다. 희귀질환치료제나 항암제는 임상 2상시험만으로 조건부 허가를 내주고 수요가 시급한 약물은 신속심사제도를 통해 빠른 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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