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은 지난 14일 이동통신 3사 임원들을 소집해 ‘군기’를 잡았다. 단말기 보조금 이용자 차별 혐의로 유례없는 사업정지 처분을 내렸음에도 상호 비방전에 열을 올려서다. 우리나라 이통시장은 그만큼 혼탁하다. 이에 정부·여당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게 단말기유통법 제정안이다.
이통사업자와 대리점 등에 보조금의 지급요건과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단말기유통법의 골자다. 대표적인 민생법안으로 분류되며, 여야간 이견도 크지 않다. 하지만 발의된지 1년이 다됐음에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 여전히 잠자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도 발이 묶여있다. 개인정보를 악용한 보이스피싱·스미싱·파밍 등 사이버범죄가 끊이지 않아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여야는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클라우드컴퓨팅발전법 제정안 등 다른 민생법안들도 국회의 벽에 막혔다. 모두 미방위 소관이다.
◇지방선거에 정신팔린 여야 미방위원들
‘식물 미방위’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 때문에 정치쟁점이 거의 없는 정보통신(IT) 등 100개가 넘는 민생법안들이 묶여있기 때문이다. 미방위 소속 의원들 상당수가 6·4 지방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있어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미방위는 4월 임시국회 들어 법안심사소위를 한차례도 열지 못했다. 여당 간사인 조해진 의원과 야당 간사인 유승희 의원은 의사일정도 논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민영방송사에 대한 노사 동수(同數)의 편성위원회 구성 조항을 방송법에 반영하지 않으면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했고, 이에 여당이 야당의 안을 수용하지 않아 미방위 전체가 표류하고 있다.
여야 미방위원들 중 상당수가 상임위 이슈보다 선거에 더 집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19대국회 후반기 원구성도 눈앞에 두고 있어 상임위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김기현 의원은 각각 경기지사와 울산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선거전략을 총괄하는 홍문종 사무총장도 미방위 소속이다. 갈등중재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선교 의원(국회 미방위원장)도 한두달 뒤면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온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매한가지다. 유성엽 의원이 전북지사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이고, 당 사무총장인 노웅래 의원은 공천을 총괄하고 있다.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지방공약 개발에 한창이고, 최재천·최원식 의원도 당 전략에 더 관심이라는 관측이다. 또 전병헌 원내대표는 당 원내전략을 짜는데 분주하고, 이상민 의원은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에 관심이 있다. 재판 중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까지 더하면, 야권에서 제대로 활동을 하는 인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지방선거에 어떻게든 관여하고 있다면 선거에 집중하느라 상임위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면서 “여야 미방위원들 상당수가 식물 상임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질타했다.
◇여야, 방송 시각차‥갈등 잉태한 미방위
미방위가 애초 갈등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많다. 미방위 안건들 가운데 방송이슈에 대해서만 유독 여야간 시각차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야당이 방송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면서 “민생법안들은 통과시키라는 국민들의 의견이 있는데도 방송이슈를 붙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여당은 최근 미방위에서 방송을 따로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해진 의원은 그간 미방위 운영이 마비될 때마다 당 원내지도부에 ‘방송특위’ 형태의 별도 상임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출신의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도 최근 “경험상 미래부와 방통위가 한 상임위가 되면 한 발짝도 못나간다”고 했다.
야당은 이에 강하게 반발한다. 현재 방송규제를 미래부와 방통위가 나눠서 하는 마당에 국회 상임위까지 분리하면 혼란만 더 커질 것이란 논리다. 그러려면 아예 정부조직을 다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방위 소속 야권 관계자는 “식물 미방위는 방송 때문이 아니라 여당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야당이 실리를 가지고 물러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면서 “야당은 여당이 물러설 명분을 주면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