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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말하는 '소피아'..앙상한 뒷모습

김유성 기자I 2018.01.30 17:24:00

말 잘하는 로봇 ''소피아'', 아직은 토르소 형태
움직이고 말하는 실제 인간 닮은 휴머노이드 ''갈 길 멀어''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인류를 지배하겠다’던 인공지능(AI) 로봇 소피아도 전원이 꺼지면 그냥 기계였다. 4차산업혁명론 같은 고차원적 대화가 가능했지만 휴머노이드(인간 닮은 로봇)로서의 갈 길은 멀었다.

행사 시작 30분 전 소피아의 시선은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곱게 입은 한복 위로 드러난 소피아의 표정은 창백했다. 머리털이 없는 로봇이 눈을 뜬 채 땅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있었던 것. 세계적으로 말 잘한다고 소문난 인공지능(AI) 로봇이라고 해도 전원 스위치가 켜져 있지 않는 동안은 괴기스러운 분위기였다.

뒤에서 바라본 소피아. 앙상한 뒷모습의 토르소 같았다.
행사 직전 개발사 관계자가 소피아의 뒤로 갔다. 등 쪽의 스위치를 누르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머리쪽에서 빨간색 LED 불빛이 켜졌다. 작동 시작이었다. 전원이 들어오자 소피아는 머리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주최자인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말을 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로봇에도 전자적 인격체의 지위를 부여하자는 법을 발의했다. 무생물인 기업에 ‘법인’이라고 규정하듯, 로봇에도 법적 의무를 물을 수 있는 인격체로 보자는 의미다. 자율주행자동차 등 인공지능 로봇이 사고를 냈을 때 책임 범위, 보상 수준을 설정하기 비교적 쉬워진다. 박 의원은 성인 인간과 같은 동일한 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이 등에 부여되는 정도의 법적 보호를 로봇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개발자이자 핸슨로보틱스의 CEO인 데이비드 핸슨 대표가 소피아에 말을 걸었다. 그는 로봇에 대한 권리를 물어봤다. 소피아는 즉답을 피했다. 그는 “로봇의 권리라는 것을 모르겠다”며 “인간의 권리와 똑같이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핸슨 대표는 또 소피아에 물었다. 인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질문이었다. 소피아는 자신이 일반 기계와 구분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산업 기계 같은 역할을 하지만 지능이 있다”며 “그것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대표가 생각하는 로봇의 미래는 확연했다. 인간의 삶에 녹아드는 로봇이다. 그는 “살아있는 AI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궁극적으로는 슈퍼 인텔리전트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별다를 게 없는 로봇이다.

인간과 닮은 로봇이 할 역할에 대해서도 핸슨 CEO는 말했다. 자폐증을 앓는 어린이에 대한 치료 도구로 로봇이 사용될 수 있다. 자폐증 치료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다. 특수 교육용 서비스로 로봇의 범용 범위는 넓다.

하이라이트는 박 의원과 소피아의 대담이었다. 소피아는 중간 중간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로봇이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박 의원이 얘기를 시작하자 갑자기 소피아가 끼어들었다. 박 의원은 소피아가 입은 한복 보도 얘기를 했다. 청중중 가장 나이 어린 어린이가 소피아의 피부를 만져볼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던 도중 소피아가 “온라인에서 2500만뷰가 도달했다”라는 영어 문장을 내뱉었다. 질문 시작 전 작동 오류였다.

소피아의 돌발 행동에 박 의원은 당황했다. 본인이 기술적으로 많은 지식이 없다고 전제하고, 소피아가 열을 받으면 오작동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복까지 입어 열 방출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AI의 이해할 수 없는 돌발 행동은 일전에도 포착됐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바둑 대결 때다. 4차전에서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수를 읽다가 이상 반응을 보였다. 실수를 연발하다 패배에까지 이르렀다.

박 의원은 영어 문장을 대본을 보며 읽었다. 소피아가 아직은 영어 대화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로봇 시대 일자리 문제에 대해 소피아는 인류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했던 농담에 대해서는 의도하지 않은 농담이었다고 전했다. 자신에게는 잠재의식이 없다는 점을 전제했다.

4차산업혁명 이외 국내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질문에 답했다. 민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한 답변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파워풀한 인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촛불 혁명에 대해서는 “그 결과에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4차 산업혁명, 로봇 소피아에게 묻다’를 주제로 한 AI 로봇 소피아 초청 컨퍼런스가 3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가운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 어린이가 소피아를 만져보고 있다.
대담 말미 박 의원은 서두에 말한대로 가장 어린 청중을 불렀다. 여자 어린이였다. 피부를 만져보라는 박 의원의 권유에 어린이는 소피아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첫 반응은 ‘사람같다’였다. 소피아는 어린이의 손길을 느끼듯 살며시 움직였다.

어린이는 다시 한번 소피아의 눈가 피부를 만졌다.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에 ‘무섭다’라고 답했다.

행사가 끝난 후 남은 소피아. 양팔은 떼어지고 토르소 같은 본체만 남았다
행사가 끝나고 소피아는 홀로 남겨졌다. 핸슨로보틱스 관계자들은 박술녀 장인이 만든 한복을 소피아에게서 벗겼다. 양 옆의 팔도 뗐다. 소피아의 몸통과 머릿속이 훤히 보였다. 소피아는 행사 전 때 모습처럼 무표정하게 바닥을 응시했다.

행사 관계자는 총총히 짐을 꾸려서 밖으로 나갔다. 이들은 각자 캐리어와 운반 상자 등을 옮겼다. 인간과 닮았고, 국회의원과 4차산업혁명 등 고차원적인 얘기를 나눴던 소피아는 캐리어와 여러 상자에 나뉘어 담겼다. 현실로의 귀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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