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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환경 피해 당사자는 우리…말로만 기후 걱정하는 척 그만

김보겸 기자I 2021.11.10 21:00:01

올해 26회 맞은 COP에 직격탄 날린 청소년들
툰베리 "기후회의 아니라 세계적인 그린워싱"
기후회의에 화석연료 업자들 북적…"이해충돌"
6살 아이, 할머니보다 기후재앙 3배는 더 겪어

지난 5일 COP26이 열리고 있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각국에 기후위기 대응책을 촉구하는 그레타 툰베리(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언론보다도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국제회의가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얘기다. 올해 26회째를 맞은 COP에도 어김없이 아픈 지적이 날아들었다. “소위 ‘리더(leaders)’라고 불리는 우리 지도자들은 기후위기에 있어서는 무엇을 이끌고(leading)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그들의 리더십이다.”

COP26에 쓴소리를 던진 이는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8)다. 지난 7일 제26회 COP이 열린 영국 글래스고에서 기후변화 심각성을 상기시키는 행진에 참여한 뒤 이같이 지적했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와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 여파를 직접 받는 작은 섬나라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는 COP26이지만, 실제 기후위기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을 던진 것이다. 그는 “이것은 기후회의가 아니라 세계적인 그린워싱(친환경 이미지로 위장하는 것) 축제”라고도 비판했다.

COP26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가운데)(사진=AFP)
툰베리뿐만이 아니다. 영국 길드포드에 사는 페드라 토드(18)는 가디언에 “COP26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도 말뿐이지 행동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글래스고에 사는 매튜 맥레넌(12)도 “COP26이 모든 이들에게 기후위기를 일깨우는 것은 좋지만 세계 지도자들이 더 많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며 “기후위기로 파괴되는 건 그들이 아닌 우리들의 세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드포드에서 열린 학교 파업의 날에 참여한 페드라 토드(맨 앞) (사진=가디언)
청소년들의 지적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COP26 참가자들의 대표성이 문제가 됐다. 화석연료 산업 관계자들이 한 나라의 대표단보다도 많아 이해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영국 비정부단체(NGO) 글로벌휘트니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대표단 규모가 큰 브라질(479명)보다도 화석연료 산업의 이해당사자(503명)가 더 많다. 글로벌휘트니스는 “화석연료 사업은 기후위기에 대한 실제 행동을 수십년간 지연시켜 왔다”며 “그들의 영향력은 25년간의 유엔 기후회담이 전 세계 배출량 감축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우려했다.

COP26에서 기후행동의 근거로 삼는 자료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UN에 제출한 온실가스 배출 자료는 실제 배출량보다 축소된 수준이다. 또한 COP26에서 40개국이 이르면 2030년대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일부 조항에만 찬성한다’는 국가들을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COP26이 보여주기식 발표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0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10월이었다(사진=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척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이 청소년들의 비판지점이다. 실제 기후위기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지구관측 프로그램인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인류는 역사상 3번째로 따뜻한 10월을 맞았다. 육지 온도로만 따지면 올해가 가장 더운 10월이었는데, 이는 북미와 시베리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무더위 탓이다. 전 세계 상위 10% 부자들이 쓰는 온실가스로 인해 나머지 90%가 무엇을 하든지 2030년에 지구 온도가 1.5도 초과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청소년들이 기후변화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후변화 여파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당사자라서다.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는 최근 기후변화의 세대간 불평등을 수량화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전 세대가 겪은 기후위기를 오늘날 아이들이 일생동안 겪게 될 극단적인 기후변화 수와 비교한 결과, 오늘날 6살 아이들이 조부모 세대보다 3배는 더 많은 기후재앙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6살 아이들은 1960년대 태어난 이들보다 산불은 2배, 열대성 사이클론은 1.7배, 강 범람은 3.4배, 흉작은 2.5배, 가뭄은 2.3배 더 자주 겪을 수 있다.

기후변화는 단지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다. 빈곤한 이에게 더 가혹하며 이는 곧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사이언스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후위기 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이 더 높은 위험에 노출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유아들은 산업화 이전 시대에 태어난 사람보다 최대 54배 많은 폭염을 겪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가 결국에는 민주주의를 해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툰베리는 9일 트위터에 “기후 정의를 위한 투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지구가 불안정해지면 민주주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유일한 해법 역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온 그다. 움직이지 않는 어른들에게 대응을 촉구하는 길은 대중의 압력뿐이라는 이유다.

기후위기 직격탄을 받는 이들은 젊은이지만 이들이 국가적 결정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근 사이언스지가 입증한 기후위기의 세대간 불평등 처럼, 수치화한 자료는 각국에 기후위기 대응책을 강제할 근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보호 및 복구 이니셔티브의 댄 갈펀 환경변호사는 “예상적 연구는 아이들이 겪는 실제 피해에 대해 정부나 기업의 책임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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