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해수(43)가 ‘버킷리스트’로 꼽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유작 ‘벚꽃동산’에 등장하는 로파힌의 대사 한 구절이다. 연기를 배우던 대학생 시절부터 이 대사를 수도 없이 연습했지만, 정식 배우로 데뷔한 이후에도 이 대사를 무대에서 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LG아트센터가 제작한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하면서 그 기회를 얻었다. 제작발표회 당시 그가 “로파힌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며 그 누구보다 큰 기대감을 드러냈던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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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샀습니다’는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처럼 중요한 대사라서 긴장됐어요. 그런데 공연을 하다 보니 맡은 역할에 오롯이 들어가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 표현하면 되겠더라고요. 폐막이 얼마 안 남았는데, 공연이 끝나면 많이 외로울 것 같습니다.”
‘벚꽃동산’은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체호프의 원작을 서울을 배경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박해수 외에도 전도연, 손상규, 최희서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지난달 시작한 공연은 어느새 한 달여 일정을 마치고 오는 7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스톤 연출은 올해 1월 한국을 방문해 1주일간 배우들과 워크숍을 갖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느낌을 바탕으로 배우들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설정한 뒤 이야기를 새로 썼다. 박해수가 맡은 황두식 역 또한 그가 워크숍에서 털어놓은 이야기가 반영됐다. 박해수는 “어릴 적 너무나 커 보이던 아버지의 숨겨진 작은 모습을 발견한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그런 부분이 반영됐다”며 “‘밥은 먹고 살아라’라는 느낌으로 이름에 ‘식’(食)이 들어갔으면 해서 이름도 ‘황두식’으로 직접 지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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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첫 날 중요한 대사를 놓치는 아찔한 실수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가 위기를 넘겼다. 함께 연기한 전도연은 “무대 경험이 많은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다”며 박해수의 연기 내공을 높이 평가했다. 박해수는 “배우들의 리듬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에 배우들을 믿고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며 “스톤 연출 특유의 작업 스타일 덕분에 실수마저도 마치 살아 있는 순간이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배우는 하나의 캐릭터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여 관객에게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창의적인 일을 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공허함이 남습니다. 배우라면 모두가 느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벚꽃동산’은 배우들 모두가 서로 보듬어주며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무대 위에 있는 순간은 행복하지만, 내려오면 외롭죠. 황두식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많이 허전합니다.”
2007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박해수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오징어 게임’ 등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매체를 넘나들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벚꽃동산’ 이후 영화, 드라마 작업 등이 예정돼 있지만, 연극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만큼 무대에서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벚꽃동산’은 내년 호주 애들레이드를 시작으로 해외 공연을 계획 중이다. 박해수는 “배우들 모두 함께 호주 공연길에 오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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