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첫 배상 판결로 경색된 한일관계가 한층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가 더욱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1억원씩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는 2016년 1월 사건이 정식 재판으로 회부된 뒤 5년만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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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남 대사는 초치(招致)된 뒤 외무성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에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차분하고 절제된 양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한일관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일 간 간극이 더 좁혀지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악화일로가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주권면제 원칙)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며 재판에 불참했다. 주권면제란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 법정에서 피고가 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한국 재판부는 일본의 주권면제 주장에 대해 “반인도적 행위는 국가 면제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가토 장관은 이날 다시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사례처럼 앞으로 법원의 판결문 송달과 원고(피해자) 측의 일본 국유재산 압류시도 과정에서 한일 갈등 격화는 불가피하다.
강제동원 피해배상 소송이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것과 달리, 이번 소송은 국가(일본 정부)를 피고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후폭풍도 상당할 조짐이다. 특히 한일 관계가 더욱 꼬이면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우리 정부에 대한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개입,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도 판결에 따른 한일 입장과 전망에 대해 즉각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판결 직후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충격은 일본 민간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징용 소송을 웃돈다”고 보도했다. 공영방송인 NHK도 “한일관계가 더욱 경색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는 “전 징용공(일제 징용 노동자) 소송 문제 등으로 ‘전후 최악’이라는 일한(한일) 관계가 한층 더 위기적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배상 판결로 “일한 관계는 한층 더 위기적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한일 정부는 공교롭게 이날 각각 강창일 주일대사,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대사를 정식 임명했다. 이달 중 부임하는 신임 두 대사 앞에 큰 난제가 하나 더 놓이게 됐다. 강 대사는 이날 언론과의 통화에서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어서 마음도 무겁고 어깨도 무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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