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대만 동서남북] 결국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 허용하는가

허영섭 기자I 2016.04.25 17:49:01
드디어 대만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 해제 여부와 관련해 한바탕 홍역을 치를 조짐이다. 내달 취임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당선자의 차기 정부가 그동안의 수입금지 빗장을 풀고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차이 당선자와 미국 당국과의 사전 밀약설까지 제기된다. 국민당과 농민단체들은 벌써부터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농업위원회 주임위원(장관)으로 내정된 차오치훙(曹?鴻)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허용 방침을 밝힌 것이 발단이다. 며칠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언제까지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언급한 것이다. 대만이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입장에서 개방화 추세에 거스를 명분이 없다는 논지였다. “농업위원회가 건강복지부와 함께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방침”이라며 “양돈 농가에 거짓말하기 원치 않는다”고도 했다.

그동안 대만이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을 금지시켰던 것은 사료 첨가제인 락토파민 성분의 인체 유해성 때문이다. 락토파민은 사육 동물의 체지방을 줄여 살코기 비율을 늘리는 성장촉진제로서, 기준치 이상 투여한 고기를 섭취할 경우 건강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대부분 국가가 금지하고 있으나 미국을 포함한 20여개 나라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일본도 엄격한 잔류 기준치 범위 내에서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중이다. 차오치훙 내정자도 이런 사실을 앞세운다. 설령 락토파민 사료 돼지고기를 수입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에서처럼 건강상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대만이 일부 미국에서 돼지고기를 들여오고는 있지만 락토파민 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돼지에 한해서다. 대만에 수입되는 캐나다나 덴마크 돼지고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락토파민의 위험성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실험 결과와 보고서가 발표된 바 있다. 쥐에 락토파민을 고용량 투여한 결과 생체 조직이 부어올랐고 입천장이 파열되거나 심지어 다리와 발가락에 기형이 나타났다는 등이다. 제한적인 인체 실험에서도 심박동이 증가하고 심근 수축·이완기가 짧아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지금껏 국민 건강과 축산농가 보호를 내세워 허용하지 않던 수입금지 방침이 왜 차이잉원 정부에 이르러 허용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느냐 하는 점이다. 대만은 2010년 미국산 돼지고기에서 락토파민 성분이 검출되자 각각 즉각 금지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듬해 미국산 쇠고기에서 락토파민 성분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만은 특히 국민들이 돼지 내장까지 즐겨 먹는 등 소비가 많다는 점에서 철저한 ‘제로 락토파민’ 정책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소비량이 적은 쇠고기에 대해서만은 락토파민 사료를 쓴 경우에도 검출 기준치 이하에 대해 수입을 허용하는 중이다.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당시이던 2002년 수입이 허용된 이래 광우병 파동으로 두 차례 중단됐다가 2012년 수입이 재개됐다. 대만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의 경우 90%가 수입으로 조달되는 배경이다. 반면 돼지고기는 10% 정도만 수입으로 해결하고 있다.

차오치훙 내정자의 앞서 인터뷰 발언이 보도되면서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발언을 차이잉원 당선자의 애드벌룬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당 측은 우둔이(吳敦義) 부총통까지 나서 민진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방침을 바꾸려는 배경이 무엇인지 총공세를 펴고 있다. 차이잉원이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6월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 정부와 무슨 내락을 주고받았는지 의혹을 밝히라는 공세도 펼쳐진다. 집권당에서 야당으로 바뀌는 입장에서 모처럼 공격의 빌미를 잡은 셈이다.

더욱이 대만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 협정에 가입하려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문제부터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다. 미국 정부도 대만의 TPP 가입 전제조건으로 이 문제를 들고 있다. 특히 차이잉원으로서는 기존 마잉지우(馬英九) 정부와 달리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TPP 가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은 이미 포기한 상태다.

논란이 야기되면서 다음 정부에서 행정원 대변인을 맡게 된 둥전위엔(童振源)이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만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소비자 건강과 관련산업 피해를 줄이는데 주안점을 두겠다면서도 TPP 가입을 위해 돼지고기 수입 논의가 따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자들과의 원활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대목에서는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민진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양돈 농가가 밀집한 농촌지역 입법위원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한다고 TPP 가입이 무조건 성사되는 것도 아니며, 가입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미리부터 수입허용 방침이 거론되는 것도 협상전략의 착오라는 비판이다.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허용 여부는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하는 단계에서 임기 동안 순항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만약 수입금지 조치가 풀어진다면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며 독립을 추진하려고 오히려 미국에 치우친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뜻하지 않은 민심의 이반을 우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광우병 논란에 부딪쳐 대대적인 촛불시위 시련을 겪었다는 사실을 하나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허영섭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