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ㄱ부동산을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25일 이데일리와 만나 “아직 문제가 터지지 않은 블랙리스트가 줄줄이 사탕처럼 대기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에서도 전세사기가 가장 많이 일어난 강서구, 그 중에서도 특히 빌라와 다세대주택 등 갭투자업자들의 먹잇감이 많은 화곡동 일대엔 아직도 전세사기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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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자들이 걱정하는 건 전세가격 하락에 따른 ‘깡통전세 도미노’ 피해다. 전셋값이 떨어지면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 최소 수백, 수천만원을 돌려줘야 하는데 갭투자 다주택자들이 현금이 부족해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사고가 줄줄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중개업자들은 전세사기 사태의 한 요인인 전세가격 하락엔 정부의 ‘실책’도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전세 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기존엔 공시가격의 150%까지 허용하던 ‘보증 한도’를 올해 1월 140%로 낮췄다. 다음달부터는 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90% 이하여야 보증서를 끊어준다. 보증한도가 공시가격의 126%로 낮아진 셈이다. 여기에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도 전년보다 18.6% 낮췄다. 예컨대 시세 3억원에 공시가격 2억원이었던 빌라는 전세반환보증이 3억원까지 가능했지만, 올해는 공시가격이 1억6000만원으로 떨어지고 전세반환보증도 2억원까지만 가능해졌다. 2020~2021년 전세보증 가입이 의무화됐기 때문에, 전세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ㄷ부동산의 대표인 김모씨는 “윤석열정부가 부자들 보유세 깎아주려고 공시가격을 낮춰준 게 아닌가”라며 “이 동네는 종합부동산세가 문제가 아니다. 공시가격 하락에 보증한도가 낮아진 게 맞물리면서 전세가격을 끌어내려 갭투기꾼이 아니더라도 전세사고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빚어졌다”고했다.
중개업자들은 집을 수십수백채 보유한 악성임대인, 즉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중개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ㄹ부동산 대표 최모씨는 “이 지역에서 오래 일해온 부동산 중개인 20여명이 공유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며 “주로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사람들 명단으로 70명 정도”라고 했다. 이어 “이 명단 오른 사람의 물건은 보러 가지도 않는다”며 “그런 곳과는 계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곡동에 집중된 전세사기에 분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ㄴ부동산의 박씨는 “작년에 터진 ‘빌라왕’을 원망하는 중개인들이 많다”며 “이곳에 10년 이상씩 일해온 중개인들은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다 흐려놨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량하게 일해온 사람들은 뭐가 되냐, 부동산중개라는 게 신뢰로 하는 건데 다 망가뜨려놨다”고 토로했다.
한편 화곡동은 빌라 283채를 매수해 전세보증금 32억원을 가로챈 ‘빌라왕’이 나온 곳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1~3월 서울의 전세사기 의심거래 291건을 경찰청에 수사의뢰했는데, 강서구가 166건으로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