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큰 짐, 캐나다에선 구조견[헬프! 애니멀]

김화빈 기자I 2023.02.13 17:23:51

6일 해외 입양길 오른 '블루'의 출국장 가 보니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재개발로 철거가 예정돼 빈집뿐인 곳에도 생명이 있었다. 작년 3월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구조된 중형견 2마리와 9마리의 자견들은 단체 협력병원에서 검진을 마친 뒤 보호센터에 입소해 가족을 기다렸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수개월 간 가족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삶. 지난 6일 ‘블루’는 자견들 중 첫 번째로 해외 입양을 가게 됐다. 그 출국길은 블루가 평생 가족을 만나 행복하기만 바라는 사람들의 밤낮 없는 노력과 연대로 채워졌다.

해외 이동 봉사자 강민지 씨의 도움으로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 도착한 블루가 제2 견생을 시작했다. 블루의 해외 입양 이후 또 다른 자견인 퍼플이게도 입양자가 나타났다.(사진=웰컴독코리아 제공)
◇ “구조견 해외 입양 봉사도 티켓팅해요”

이날 탑승권 발권 30분 전 인천공항 제2터미널 내 카페에서 만난 해외 입양 이동 봉사자 강민지 씨는 거주하는 캐나다로 돌아가기 위한 항공권을 예매하며 이른바 강아지를 위한 ‘티켓팅’을 했다. 입양견 이동 봉사는 해외 입양을 가게 된 반려견과 같은 행선지의 사람들이 해당 견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 없이 반려견만 비행기에 탑승하면 항공사에선 반려견을 특수 수하물로 취급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데, 이를 사람이 데리고 타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한항공에서 사람과 함께 탑승할 수 있는 반려동물 수는 최대 2마리다.

민지 씨는 “저도 반려견 ‘메리’를 캐나다에서 해외 입양했다. 당시 해외 입양 이동 봉사자라는 개념도 생소해 오래 기다렸다”며 “하루빨리 반려견이 가족 품으로 오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티켓팅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에는 한국에서 입양된 반려견들이 참 많다. 저희 아파트에만 진도 믹스견이 5마리나 있다”며 “길을 걷다가도 진돗개가 자주 보인다. 한국에서 입양되지 못했던 아이들이 캐나다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 이동 봉사가 개의 생을 바꿀 수 있다고 느낀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이 해외 입양 이동 봉사자를 찾는 이유는 단연코 ‘비용’이다. 입양 보낼 개들은 차고 넘치는데 수백만 원에 달하는 티켓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블루처럼 이동 봉사를 통해 캐나다로 입양되면 단체 측은 항공사가 부과하는 ‘반려동물 운송 요금’만 부담하면 된다. 대한항공의 경우 이동함 포함 32kg 이하일 경우 30만 원을 부과한다. 이동 봉사자는 티켓값 외 추가 요금 부담 없이 30분에서 1시간 일찍 나와 반려견과 검역 절차를 함께 진행하면 된다.

전정순 웰컴독코리아 부대표와 해외 입양 이동 봉사자 강민지 씨가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티켓 발권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나이가 많아도 장애가 있어도 입양되는 곳 ‘캐나다’

캐나다에선 유기견·구조견을 해외에서 입양해 키우는 일이 흔하다. 블루의 해외 입양 절차를 도맡아 온 웰컴독코리아 전정순 부대표는 “저희 단체는 캐나다로 1년 내내 입양을 보낸다. 입양자가 입양을 문의하면, 현지 단체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생활 여건을 점검한 뒤 이동 봉사가 잡히는 대로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이 단체는 현재까지 740여 마리의 개를 해외로 입양 보냈다.

전 부대표는 “캐나다 입양자 분들은 예컨대 구조 전 개가 어떤 삶을 살았는 지와 같은 것을 궁금해 한다. 또 입양견이 트라우마가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노력할 지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전 부대표는 이를 ‘가족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캐나다에선 사람과 함께 살기 어려울 정도의 공격성만 없다면 나이가 많든 장애가 있든 입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캐나다 공항에선 해외 입양견을 ‘구조견’(Rescue Dog)으로 지칭하고 있다. 단체가 해외 이동 봉사자에게 제공하는 안내문에 따르면, 이동 봉사자는 입국심사를 마친 뒤 35번 벨트로 이동해 공항 포터를 불러 “구조견이 동행했다”고 밝힌다. 이후 이동 봉사자는 공항 검역 담당자에게 준비한 영문서류, 검역·건강 증명서를 제출하고, 입양자는 포터 비용을 지불해 개를 인수하면 된다.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만 보고 일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동 봉사자와 함께 공항 2층 정부종합행정센터 ‘동·식물 검역소’에서 ‘동물검역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이른바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큰 짐 부치는 곳’으로 이동했다. 개를 임시 보호했던 사람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쏟는다고 해 붙여진 별칭이다. 한국에서 큰 짐으로 부쳐진 블루는 앞으로 구조견이자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게 됐다.

해외 입양을 위해 출국을 앞둔 개들의 임시보호자들이 통곡의 벽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사진=tvN ‘캐나다 체크인’)
공항 직원들이 이송 준비에 한창인 사이 주어진 5분여의 시간 동안 전 부대표와 민지 씨가 블루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다.

잘 살기 위해 오르는 고생길이라지만, 블루는 화물칸에 실려 물만 먹으며 15시간을 버텨야 한다. 블루도 낯선 환경에 긴장한 듯 케이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떨었다. 전 부대표는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는 아로마 오일을 먹인 뒤 블루를 몇 번 쓰다듬었다.

이윽고 녹색 그물망으로 감싸진 케이지가 공항 직원에 들려 전용 통로로 사라졌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접하지만, 겪을 때마다 낯선 탓일까. 곧장 발걸음을 떼지 못한 전 부대표는 통곡의 벽 앞에서 “참 힘든 여정이지만, 유기견이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일한다. 지금 씻은 듯 고단함이 사라졌다”고 짧게 말했다. 7일 전 부대표가 “오전 6시 12분 블루가 해외 입양자에게 잘 인계됐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블루의 입양자는 단체를 통해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다음은 편지 전문.

“블루와 마치 원래 가족이 될 인연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블루는 마우이와 함께 더 바랄 게 없는 견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보살핌과 식단을 제공하며 관심과 애정을 줄 예정입니다. 블루와 마우이가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데리고 다니며 세상을 구경시켜줄 것입니다.”

마우이와 새 가족이 된 블루, 입양자는 이름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사진=웰컴독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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