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아시아에서도 최하위권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는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하락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 1999년 상장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제정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2003년 개정 이후 13년만에 뜯어 고친다. 모범규준은 주주 권리와 이사회의 경영 판단 절차 등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한 자율 가이드라인으로 기업이 정보를 투자자와 공유하고 기업과 투자자가 협력해 공정한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다.
◇13년 만에 모범규준 개정 추진…왜?
18일 거래소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지배구조평가에서 아시아 주요국 11개국(홍콩, 싱가폴,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 8위에 그쳤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독립성, 책임성, 공정성 등을 점수화한 지배구조 총점은 43.6점으로 평균 52.8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수준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결과 글로벌 헤지펀드에 의해 국내 굴지의 기업이 경영 참여 및 수익 극대화 전략의 희생양으로 전락되고 있다”며 “기업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지배구조 문제를 기업에 대한 규제로만 인식해 개선 노력에 게을리하면서 방치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범규준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범규준 어떻게 개정되나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다. 기관투자자에 대한 섹션을 추가해 기관투자자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주주권(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그 행사 내역을 공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정재규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기관의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은 또 자본시장법과 상법,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등 국내 지배구조 관련 법령의 개정사항을 반영하고, ‘임원 및 보수 정책의 마련 및 공시’ 원칙을 신설해 관련 내용을 공시하도록 권고했다. 아울러 리스크관리위원회 구성과 이사회 내 다양성 추구 등이 추가됐고,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가 문제됨에 따라 공정거래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실효성 높이기 위한 제재 수단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정 미준수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실질적인 제재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주주총회 의장의 전횡 사례와 이사회가 원하지 않는 주총 결의 사항에 대해 이행하지 않는 사례, 준법통제 기준 및 준법 지원인을 구비하지 않는 사례 등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규율 강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수현 한국외대 교수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규제공백을 채울 수 있는 ‘원칙준수, 예외설명(Comply or Explain)’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이는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불이행 이유를 설명하는 주요 현안 보고서를 작성해 정기 공시토록 하는 방식이다. 최 이사장은 “기업이 지배구조 모범규준 준수 현황을 투자자에게 자율적으로 공표하는 예외설명 제도를 도입해 시장을 통한 지배구조 견제기능을 강화하겠다”며 “또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과 같은 지배구조 관련 투자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지배구조 평가등급을 공표해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유도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