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남광섭(가명 49)씨는 건담 프라모델 마니아다. 지금도 주말이면 꼬박 이틀을 꼼짝하지 않고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색까지 입혀 ‘작품’을 완성한다. 남씨에게 건담 프라모델은 단순한 취미 이상이다. 쏠쏠한 용돈벌이다. 남씨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남씨가 만든 건담은 일본의 오타쿠(御宅)들에게 꽤 인정받는 편이다. 남씨는 자신이 만든 건담 프라모델을 일본 경매사이트에 올려서 판다.
“처음부터 좀 희귀한 한정판 모델을 눈여겨 봐두게 요령이야. 원가는 보통 1만엔 정도 드는데, 내가 만들면 10배 이상 가격에 보통 팔리거든. 비상금이 떨어질 때마다 건담 하나씩 만들어서 술값에 보태지. 마누리가 싫어하는 것 빼고는 할만해. 하하.”
‘오타쿠의 나라’ 일본에서는 희귀한 것에 기꺼이 값을 지불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어느 나라건 제한된 재화의 값이 비싸기 마련이지만, 일본은 유독 그런 문화가 강하다. 실제 일본에 가보면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깔려 있다. ‘재밋긴 한데 이런 물건이 대체 얼마나 팔릴까’ 싶지만 꼭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일본 현지인들의 말이다. 특이하거나 예쁜 물건이 있으면 감탄사 “스고이(すごい, 멋지네)”를 남발하고 값을 치른다. (동네 선술집에서도 온갖 종류의 일본 술이 메뉴판에 적혀 앴다. 주문하기도 쉽지 않다.)
오타쿠 문화는 일본 중소기업의 든든한 기반이다. 2012년 기준으로 일본 전체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은 99.7%에 달한다. 고용비중도 69.7%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갖가지 상품을 만들고 이 상품들은 일본 내수시장에서 생명력을 발휘하면 살아남는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다.
남씨는 이미 노후 준비를 다 해놨다고 큰소리를 친다. 은퇴하면 동네 술집에서 만난 술친구 사장 회사로 옮기기로 이미 약속을 해놨다는 거다. 동네에 있는 조그만 회사란다. 뭘 만드는 회사냐고 물었다. “나사를 만드는 회사인데, 미국의 우주항공국 나사(NASA)에 납품한다고 하더라고. 나사 만드는 회사가 나사에 수출하는 셈이지.” 술기운이 올라온 남씨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