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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농산물의 ‘생산-유통-요리’ 과정에 비유하면 선명해진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한 끼의 음식은 생산자, 유통업자, 요리사의 분업을 통해 완성된다. 씨를 뿌리고 작물을 길러내는 농부가 있고 그 농작물이 시장에 내놓을 만큼 괜찮은지 선별하는 유통업자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 재료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완성하는 요리사가 있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고 그 차이가 있어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
형사사법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하는 경찰은 ‘농부’다. 수집된 증거가 법적으로 적법한지, 공소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지를 평가해 법정으로 보내는 검사는 ‘유통업자’다. 그리고 그 증거를 바탕으로 유무죄라는 최종 결과물을 내놓는 판사는 ‘요리사’다. 이 분업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다. 권한을 나눠 놓은 불편한 장치도 아니다. 오히려 각자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어 오류와 남용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유통업자가 수확된 농산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직접 낫과 호미를 들고 논밭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겉으로는 책임감 있어 보일 수 있다. “좋은 재료가 없으니 내가 직접 캐오겠다”는 말은 언뜻 정의롭고 유능하게 들린다. 그러나 시스템은 그 순간부터 흔들린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객관적 선별’ 기능이다. 자신이 힘들여 기르거나 캐온 작물을 두고 “이건 상태가 좋지 않다”며 냉정하게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형사절차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사가 직접 수집한 증거를 두고 그 적법성과 신빙성을 엄격하게 의심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수사를 통제하고 걸러내야 할 사람이, 동시에 그 수사의 주도자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전문성의 착각이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시대에 검사의 핵심 전문성은 더 이상 ‘현장 증거 수집’에 있지 않다. 농사에 대한 전문 지식도, 거친 흙바닥에서의 경험도 부족한 검사가 직접 재배에 나서는 순간, 농장은 혼란에 빠진다. 낫질을 서투르게 하다가 귀한 작물을 망치거나,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작물을 캐올 수도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정작 본연의 업무인 품질 검수와 신속한 유통은 소홀히 하면서, 창고에 쌓인 재고는 계속 늘어만 간다.
그래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농부에게만 농사를 맡길 수 없다고 한다. 수사지휘가 폐지되고 검사와 수사기관이 상호협력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보완수사 요구의 ‘실효성’을 우려한다. 검사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는 상황을 걱정하며,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답답한 상황이면 직접 나서고 싶은 검사의 정의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문화된 ‘관계’가 아니다. 법전에 ‘수사지휘’라는 단어가 있는 독일이지만, 정작 검사도 수사관도 서로를 상하관계로 인식하거나 대우하지 않는다. 수사과정에서 철저히 전문성을 존중하고 상호협력하는 문화와 관행이 발달해있다. 반면, ‘지휘’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법적으로 수평협력 관계인 미국이라고 해서 검사와 수사기관이 상호협력과 지원에 인색하지 않다. 보완수사 요구와 이행체계는 고도로 발달되어 있으며, 사실상 ‘한 팀’처럼 일하고 있다. 그리고 검사와 수사관은 상호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일이 잘되게 하려면, 형식이 아닌 실질을 봐야 한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는 단순히 권한을 나누는 싸움이 아니다. 각 전문 영역의 독립성을 존중함으로써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게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적법 절차’라는 바람직한 과정과 결과를 제공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다.
고민이 될 때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검사는 유통업자의 자리에서 농부와 소통해야 한다. 직접 수사라는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상호협력과 설득을 통해 사건의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직접 낫을 든 검사의 모습은 결코 정의의 실현이 될 수 없다. 경찰은 증거를 수집하고 검사는 그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때 우리 ‘사법의 식탁’은 비로소 안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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