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두 생명 앗아간 전자감독 '구멍', 방지책 내놨지만…실효성은 '글쎄'

하상렬 기자I 2021.08.30 18:27:59

전자발찌 끊고 2명 살해…법무부 관리 '부실' 논란
강도 강간·강도 상해 등 전과 14범, 비판 목소리 ↑
법무부, 30일 재범 방지 약속…"알맹이 없다" 지적
"인력 확충 구체안 나와야…재범, 면대면 교화 기능 커"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지난 29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성범죄 전과자 강모(56) 씨가 여성 2명을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자발찌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강 씨는 강도 강간·강도 상해 등 범죄를 저지른 전과 14범으로 법무부의 ‘집중 관리 대상자’였음에도 첫 범행 후 새벽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법무부는 전자발찌를 훼손한 강 씨에게 준수 사항 위반 사실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라는 사실만 고지한 채 돌아갔고 결국 또 다른 추가 희생자가 나왔다.

법무부의 미흡한 관리에 더해 전자감독 제도 자체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법무부가 서둘러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을 막겠다며 향후 대책을 발표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전자감독대상자 전자장치 훼손 사건 경과 및 향후 재범 억제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재범률 감소에도 고질적 인력난 탓 관리 부실

전자발찌 제도는 전 세계 30여개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미국(1983년), 캐나다(1987년), 영국(1989년) 등 선진국이 일찍이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강력범에 대한 재범 방지 목적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 경범죄자에 대한 자택 구금이 목적이었다. 미국은 도입 초기엔 오히려 강력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지 않고, 대신 교도소 과밀 수용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들을 전자발찌 착용 대가로 가석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캘리포니아주 등에선 우리나라와 같이 재범 방지를 위해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전자발찌 제도의 목표가 ‘재범 방지’로 수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처음 도입됐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이 반복되자 이에 대한 방지책으로 2007년 ‘특정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 등에 관한 법률(현행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이듬해 9월부터 시행됐다.

처음엔 성범죄자만을 대상으로 전자발찌가 부착됐지만, 미성년자 유괴범, 살인범, 가석방자 등으로 점차 확대 시행됐다. 전자발찌 도입은 성폭력 사범의 동종 범죄 재범률을 크게 감소시켰다.

전자발찌가 도입되기 이전인 지난 2004∼2008년 성폭력 사건 중 재범 사건이 14.1%였지만 2020년 기준 전체 성폭력 사건에서 전자발찌 착용자가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이는 전자발찌 도입의 효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해마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어나면서 전자발찌를 훼손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자발찌 착용자는 제도 시행 첫해 151명에 불과했지만 지난 7월 기준 4847명으로 30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자발찌 훼손자는 지난 2009년 1명에서 2019년에는 23명까지 늘어났다. 올해도 이달까지 13명을 기록했으며, 이 중 2명은 전자발찌를 끊고 잠적해 아직 검거조차 하지 못했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증가하는 것에 비해 전자감독 관리 인력 증가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30배 넘게 늘어나는 동안 이를 관리하는 감독자는 2008년 48명에서 지난 7월 기준 281명으로 약 6배 느는 데 그쳤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이 결국 화를 불렀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전자감독 대상자인 강 씨는 지난 5월 천안교도소에서 출소하며 전자발찌를 차게 됐다. 법무부는 전자감독 대상자들의 범죄 경력이나 범죄 수법,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해 ‘집중 관리 대상자’와 ‘일대일 관리 대상자’로 분류하는데, 강 씨의 경우 일대일이 아닌 집중 관리 대상자였다. 강 씨와 같은 집중 관리 대상자들은 인력 부족 탓에 보호관찰관 1명이 여러 명을 전담한다.

지난 7월 현재 전자감독 대상자는 4847명인데, 이들을 관리할 인력은 고작 281명으로, 1명의 보호관찰관이 평균 17.3명을 관리한다. 성범죄자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보호관찰 직원 1인당 평균 담당 인원수는 7~8명이다. 미국 9명, 영국 9명, 스웨덴 5명 등 대부분이 10명 이내다. 반면 한국은 평균적으로 보호 관찰관 한 명당 17명을 담당한다. 주요국보다 한국의 보호관찰관 한 명이 전담하는 대상자는 2배 이상 많은 셈이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를 방문해 현재 시행 중인 전자발찌를 살펴보고 있다.
◇‘급조’ 대책, 법조계 “알맹이 없다…인력 확충 구체안 나와야”

법무부는 이날 서울고검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전자장치 견고성 개선 △재범위험성에 따른 지도감독 차별화 및 처벌 강화 △경찰 공조체계 개선 △인력 확충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형사 정책 전문가들은 이날 법무부 브리핑이 ‘알맹이’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에 나왔던 것을 되풀이했을 뿐이고, 새롭고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법무부 방침이 모두 계획 단계라는 점에서 ‘보여 주기식’ 발표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무부가 여론을 의식해 부랴부랴 브리핑을 잡아 새롭게 눈여겨볼 방침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인력 확충’을 꼽는다. 인력이 부족해 즉각적이면서도 세밀한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석방 대상자도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가 되면서 전자감독 대상자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하지만 이걸 담당하는 보호관찰관 수는 200여 명에 그쳐 보호관찰이 수박 겉핥기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범을 방지하는 측면에서 대상자를 직접 만나 고민을 상담하는 등 탈범죄화를 이끄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까지는 사실상 전자발찌만 채워 놓은 것에 그치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인력 충원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전자감독 인력을 늘리는 것보단 보호관찰 심사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인력 문제는 자원봉사, 경찰 등 지역사회 참여를 활발하게 연계해 감시·감독 기능을 보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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