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여의도 정가는 이제부터 본격 ‘전쟁’이다. 국정감사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정치권의 시선은 곧바로 있을 예산·입법 심사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비하는 여야의 준비는 한참 부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졸속·부실 우려도 제기된다.
◇예산부수법안 논의기구 구성도 안돼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29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30일 이에 대한 공청회를 실시한다. ‘예산정국’이 이때부터 본격화되는 셈이다.
예결특위는 이후 다음달 초순부터 예산안 대정부 종합정책질의를 열고, 중순부터는 계수조정소위를 가동할 복안을 갖고 있다. 예결특위 관계자는 “조만간 예산안 심사 일정이 확정될 것”이라면서 “11월 중으로 심사를 마무리하는 스케줄”이라고 말했다. 이는 올해부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2일 예산안이 자동 부의되는데 따른 것이다. 여야는 여지껏 매해 12월 초에 가서야 예산안을 상정하고 본격 논의에 나서, 연말에 예산안을 처리했다.
예산안 심사는 국회의원 개인의 ‘차기’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특히 올해 각 지역구 의원들의 예산 ‘성적표’는 오는 2016년 차기 총선과도 직결될 수 있다. 정치권 한 보좌관은 “예산을 얼마나 따냈는지가 지역에서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예산안 심사의 하이라이트인 계수조정소위가 시작되면 이른바 ‘쪽지예산’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수소위는 예산안 심사 막판 증액·삭감을 진행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문제는 예산안과 맞물려가는 예산부수법안 논의에 대한 준비가 아직 안됐다는 점이다. 예산부수법안들은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에서 다뤄지는데, 여야는 현재 조세소위 구성도 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기재위 야당 간사인 윤호중 의원은 “19대국회 후반기에는 야당이 조세소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추후 여야간 신경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기재위 소속 야당 한 관계자는 “국감 증인채택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조세소위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고 말했다. 조세소위가 시작된다고 해도 담뱃세 인상 등 ‘서민증세’ 등 첨예한 쟁점들이 산적하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부수법안도 논의 여부와 관계없이 12월2일 자동 부의된다. 설사 예산안이 제때 심사된다고 하더라도 예산부수법안에 진척이 없으면, 졸속·부실 우려는 커질 수 밖에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도 부실처리 우려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연말 정기국회를 달굴 메가톤급 이슈로 급부상했다. 청와대가 새누리당에 “연내 처리”를 압박하면서다. 청와대의 처리 의지가 워낙 강경하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연내 처리는 힘들다”(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면서도 일단 논의 테이블에는 동참했다. 여·야·청 모두에게 연말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이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부내용에 들어가면 진통은 불가피하다. 일단 정부와 여당간 여권 내 의견통일도 아직 안된데다, 야당은 전혀 다른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규백 원내수석은 이날 YTN 라디오에 나와 “정부안에 비해 납입과 수령액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으로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더내고 더받는’ 개혁안인 셈이다. 이는 당초 정부가 준비한 ‘41% 더내고 34% 덜받는’ 식의 공무원연금 개혁안과는 완전히 다른 기조다.
정권의 명운이 걸린 이 작업을 연말까지 처리하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전망도 상당하다. 시간에 쫓겨 부실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야당은 “내용이 방대하다”는 이유로 연내 처리를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잠자는 호랑이의 생니 뽑기’에 비유될 만큼 공무원집단의 조직적인 저항도 거세다.
이른바 ‘세월호 3법’ 역시 시한폭탄이긴 마찬가지다. 당초 여야가 처리시한으로 합의한 이번달을 넘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특히 해양경찰청 해체 등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간 이견이 적지 않다.
◇여야 중점 경제법안 등 표류 가능성
상황이 이렇자 여야간 쟁점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정부·여당은 그동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관광진흥법 개정안 △크루즈산업육성법 제정안 △의료법 개정안 등을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규정하고 처리를 촉구해왔지만, 이에 야당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여야간 당론이 뚜렷한 부동산 관련입법도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라면 지난해처럼 ‘최악’ 정기국회 오명이 여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세월호 참사 이후 핵심 후속법안으로 꼽혔던 부정청탁 금지·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김영란법)에 대한 입법논의도 잠정 중단된 상태다. 여야는 최근 세월호 후속법안을 정하면서 김영란법은 포함하지 않았다. 추후 다른 초대형 정가 이슈에 묻힐 경우 장기간 표류할 수도 있다.